다윗은 언약궤 이전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삼만명의 군사들을 모으고, 이스라엘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의 언약궤가 이동하는 것을 기념하였습니다. 온갖 악기들을 준비하여 연주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정적인 실수를 했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데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언약궤는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누구도 다윗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언약궤는 소가 끄는 수레에 실려 떠나게 됩니다.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자 수레를 끄는 소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수레 위에 있던 여호와의 언약궤가 행여 땅에 떨어질까 염려하여 언약궤에 손을 댄 웃사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는 절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됩니다. 웃사도 이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비극이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은 웃사가 죽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는 일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행여 자신도 그와 같이 여호와의 진노로 죽임을 당하게 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언약궤는 오벧에돔이란 사람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그 기간이 석 달 정도로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에게 놀라운 소문이 들려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머물고 있던 오벧에돔의 집에 엄청난 복이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봅시다. “(삼하 6: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여호와의 궤는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오벧에돔의 집에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습니다. 즉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 주셨습니다. 그의 사업, 그의 자녀들, 그가 키우는 가축들, 그가 농사짓는 논밭, 그의 온 가문에 복이 넘치도록 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모든 인류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는 복 받는 비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2절 다시 한번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가문에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언약궤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가 그의 집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도 빨리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언약궤를 찾아야 합니다.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습니까? 만나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십자가 돌판입니다. 이게 다 무엇과 연관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 삶에 무엇을 두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는 것입니다. 이 넘치는 복을 받는 비결을 깨달은 왕이요 선지자인 다윗이 성령에 충만하여 말했습니다. “(시 1:1, 개정)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개정)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 1:3, 개정)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오벧에돔의 가문은 여호와의 임재가 3개월 밖에 안 있었는데, 그 주변 이웃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복을 받았습니다. 3개월 만에! 대단한 일 아닙니까?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평생 살아간다면 얼마나 큰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부터 여호와의 언약궤,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 속으로 가지고 들어오십시오. 말씀을 먹으십시오. 말씀을 바라보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그리고 주야로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들은 마치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새가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일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다윗은 오벧에돔 가문에 복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동하는 일을 시도합니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궤를 옮겼습니다. 13절을 봅시다. “(삼하 6:13, 개정)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여기서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고핫자손입니다. (레위 지파: 고핫, 므라리, 게르손) 다윗이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언약궤를 옮겼습니다. 다윗은 신이 났습니다. 그토록 그가 사모하던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함께 살 생각을 하니 신이 다 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14절 봅시다. “(삼하 6:14, 개정)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여기서 다윗이 입은 에봇은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울 때 입던 옷입니다. 다윗이 이것을 입은 것은 그의 춤이 경거망동한 행동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음을 암시해 줍니다. 사람은 무엇을 기뻐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사람에 기뻐하고, 물질에 기뻐하고, 건강에 기뻐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여호와를 가장 기뻐하십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다윗 왕이 이렇게 기뻐하니 백성들은 또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15절을 봅시다. “(삼하 6:15, 개정)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백성들도 큰 목소리로 소리지르고, 나팔을 불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에 가득한 기쁨,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항상 어디를 가나 흥을 깨는 사람들이 있지요? 다름 아닌 다윗의 아내이자 사울의 딸인 미갈이었습니다. 16절 봅시다. “(삼하 6:16, 개정)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그녀는 남편 다윗이 왕의 체통도 잊은 채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다윗을 속으로 비웃고 바보 취급했습니다. 남편을 업신여긴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것 보고, 세상은 우리를 바보 취급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보고 미치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보가 아니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궤 이동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여호와께 제사도 드리고, 함께 참여한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빵, 고기, 건포도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백성들을 축복했습니다. 다윗 생애에 이처럼 좋은 날이 또 있었을까요? 다윗은 기쁜 마음으로 자기 가족을 축복하려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때 미갈이 남편 다윗을 무시하며 말합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왕이 체면을 잃었군요. 당신은 당신 신하들의 여종이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었어요. 당신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몸을 드러내는 바보 같았어요.”
다윗이 미갈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호와 앞에서 그런 일을 했소. 여호와께서는 당신 아버지가 아니라 나를 선택하셨소. 여호와께서는 사울의 집안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으셨소. 여호와께서는 나를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 주셨소.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오. 앞으로 더 낮아져서 체면을 잃는 일이 많을지라도, 여호와 앞에서는 그렇게 되고 싶소. 그러나 당신이 말한 그 여종들은 나를 존경할 것이오.” 다윗은 그의 춤이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바라보며 춤을 춘 것이죠. 참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간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을 기뻐하시고 넘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전심으로 예배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고 바보 같다고 조롱한 미갈, 과연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3절 봅시다. “(삼하 6:23, 개정)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고 예배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조롱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끊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말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 오늘 이 하루 다윗처럼 주님의 넘치는 은혜 안에 뛰놀며 기쁨의 찬송과 춤을 주님께 올려 드리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