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시대 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그후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언약궤는 아비나답이란 사람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됩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된 이후 그는 이 언약궤를 자기가 머물고 있는 성으로 옮겨오려고 계획합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왕궁으로 모셔와 언약궤 앞에서 여호와께 묻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언약궤를 왕궁으로 옮기려는 다윗의 열심은,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일을 위해 다윗은 군사 삼만 명을 소집했습니다. 언약궤를 이동하는 일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틈을 타서 블레셋의 공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사를 모았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이동하기 위해서 소가 끄는 새 수레를 준비했습니다. 이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낼 때도 수레를 사용했습니다. 다윗과 백성들은 협의하여 수레를 이용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것은 그들 나름대로 언약궤에 대한 최고의 존경심을 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면, 언약궤를 이동할 때는 반드시 레위 자손 중 그핫 자손이나 제사장들이 언약궤 고리에 끼워져 있는 채를 어깨에 메고 가야 했습니다. “(민 4:15, 개정)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여호수아서를 보면, 요단강을 건널 때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앞서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 당시 사람들 중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동할 때 그핫 자손이나 제사장들이 언약궤 고리에 끼어져 있는 채를 어깨에 매고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사사시대와 이스라엘 왕정 초기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지했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등한시 했었습니다.
언약궤는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고, 아비나답 가문 사람인 웃사와 아효 두 사람이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나왔습니다. 아효는 궤 앞에서 걸어갔고, 웃사는 수레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백성은 각종 악기들을 가지고 언약궤 앞에서 연주하였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기에 이 연주와 노래는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찬양이었습니다. 언약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게 되자, 언약궤를 실고 가던 수레를 끌던 소들이 갑자기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습니다. 이 때 수레 옆에서 수행하던 웃사가 언약궤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궤는 절대로 손으로 만져셔는 안됩니다. 웃사는 결코 손 대면 안 되는 언약궤를 붙잡은 것이죠. 그 결과 7절 말씀과 같이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삼하 6:7, 개정)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목표가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웃사의 잘못, 다윗의 실수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언약궤를 이동하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교회 건물을 세워야 하는데, 공무원이 비리 공무원이다. 허가를 안 내는 거에요. 뒷돈을 달라는 거죠. 공무원이 뒷돈을 안 주면 교회 세울 수가 없다는 거에요. 교회 건물을 세워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여러분이라면 건축위원회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실제로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어느 교회가 이런 일을 겪었어요. 건축위원회 안수집사님이 목사님께 말합니다. “목사님, 다들 그렇게 하는데 어쩌겠어요? 이렇게 안 하면 우리 건축 못해요.” 그러자 목사님이 말합니다. “집사님,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그렇게 살지 말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인데, 우리 마져 그렇게 살면 우리는 세상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죠! 집사님 우리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실 때까지 건축 연기합시다.” 이게 말이 쉽죠. 건축위원회 분위기가 얼마나 찬물을 부은 듯 가라앉았겠습니까? “목사님,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언제 승인이 나겠습니까?” 다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도 목사님이 요지부동입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결국 건축위원회 섬기던 안수집사님들도 하나 둘 자리를 내려 놓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교회 새로 건축 못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비리 공무원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 났어요. 그리고 교회 건축 승인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교회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놀랍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교회 표어를 들어보십시오. “예수를 알게 하라. 예수를 사랑하게 하라. 예수로 살게 하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아는 것, 사랑하는 것까지는 가도 예수로 살게 하는 부분에서 실패합니다. 예수로 산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목표가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내가 손해 봐야 해도, 오래 기다려야 해도 말씀대로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요, 가장 유익한 길이었음을 고백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