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왕국을 다스리는 왕 앞에 나아가 간절히 자비를 구하는 사람은 어떤 자세를 하고 있을까요? 분명 왕 앞에서 다리를 꼬아 앉아 있거나, 바닥에 누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몸은 바짝 엎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 상태와 태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자세로 기도했을까요? 15절 말씀을 보니 그는 또한 온 우주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마치 왕 앞에 나아간 신하가 무릎을 꿇고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하듯이,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바울은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하나님을 “온 세상의 주관자 되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스스로 짓지 않고, 그의 부모가 주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다 제3자가 부여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나라는 존재보다 앞선 사람이 있었고, 나라는 존재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모든 인류의 근본이며 창조자 되심을 의미합니다.
자, 이제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내용을 살펴봅시다. 16절을 보면 먼저 바울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강건’이란 단어는 ‘낙심’이란 말과 반대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고통과 환난 가운데 낙심하지 않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심령을 강건케 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고난을 통과하는 성도들을 격려, 위로하시고 힘을 더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 기도를 도우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며, 성령은 예수님을 닮아가게 만들어 주십니다.
17절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항상 머물러 계시길 간구했습니다. 마치 큰 나무의 굵은 뿌리들이 땅 속에 깊이 박혀 있어, 폭우가 몰아쳐도 쓰러지지 아니하고 단단하게 서 있는 것과 같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속사람이 더욱 강건하게 변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터가 더욱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단단하게 세워져 가야 합니다.
그와 같이 되는 비결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18-19절 유명한 말씀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엡 3:18, 개정)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엡 3:19, 개정)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얼마나 큽니까? 얼마나 넓습니까? 얼마나 깁니까? 얼마나 높습니까? 얼마나 깊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온전히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두 양팔을 벌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 품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가장 비참한 상태에 빠진 흑암 속 죄인들도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능히 건져 내십니다. 살인자, 간음자, 도둑, 중독자 주님의 사랑이 품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주님의 사랑을 어찌 다 기록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평생토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새롭게 배우고 알아가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20절 봅시다. “(엡 3:20, 개정)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기도하다 보면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담지 못해서 담대하게 구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바램과 소망은 우리의 기도보다 더 큽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미쳐 구하지 못하고 말로 아뢰지 못한 기도에도 하나님은 응답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초월하여 주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박해를 당했고, 추방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 자신도 감옥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쓸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이미 자신의 지혜와 상식을 뛰어넘어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에서는 채찍질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것이 감옥의 간수를 구원케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가 탄 배가 폭풍으로 난파되었을 때는 병사들과 죄수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그가 섬에서 독을 가진 뱀에 물렸을 때에는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길과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간구하고, 상상하는 것을 훨씬 초월하여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크신 능력을 베푸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히 영광을 받으시도록 찬양하며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