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바울은 그가 사역했던 교회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고, 감옥에 그를 만나러 온 동역자들을 통해 간간히 교회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그가 들은 소식은 그들이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5절을 봅시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교회 성도들이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비록 몸은 감옥에 갇혀 있으나 바울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16절 말씀처럼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감옥에서 기도할 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기억하고 떠올리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옥이란 공간도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이 교회와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기도는 교회가 계속해서 달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엔진 오일과 같습니다. 기도가 없어도 잠시 동안은 달려갈 수 있을지 모르나, 기도가 끊어지면 얼마 못 가서 고장이 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가득 넘쳐나길 기도합시다. 우리들도 바울처럼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는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자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7절부터 19절까지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엡 1:17, 개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먼저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바로 성령 하나님을 뜻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예수를 구주라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계시해 주심으로 영적으로 어두운 우리 눈이 밝아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지금도 완벽하신 그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자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등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깨닫게 하시고 알려주시는 이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을 주사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신앙생활의 시작이고 과정이고 완성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말씀을 깨닫고 배워갈 때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고, 변화합니다.
18절 말씀을 봅시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두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주님의 자녀로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궁극적인 소망은 완전한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교제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환난을 벗어나 고통과 눈물과 죽음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주와 함께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녀로 부르셨다는 의미를 깨닫도록 간구했습니다.
바울의 세 번째 기도제목은 성도들이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역시 앞서 말한 부르심의 소망과 일맥상통합니다. 여기서 기업이란 하나님 백성이 들어가게 될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을 의미합니다. 천국의 영광 즉 천국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풍성한지 깨닫는 것입니다. 천국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받게 될 이 기업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의 네 번째 기도제목은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 받은 백성들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에 대한 진리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깨닫는 것입니다. 19절을 봅시다. “(엡 1:19, 개정)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고통 뿐인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천국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려 하시면 그 무엇도 그 뜻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편에 계셔서 우리가 인생의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도와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악한 세력에 대항하여 싸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연약한 인간도 강한 용사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믿음이 약한 자도 강한 신자로 세워 주십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우리에게 베풀어 졌음을 알도록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간구한 바울은 이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20절을 봅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역사하니,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을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21절을 보니,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정복자와 왕들과 황제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이름보다 존귀한 자는 없습니다. 아무리 큰 제국을 다스린 황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비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그분을 대적하려는 어떤 세력도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예수님을 대적할 적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뛰어나십니다. 저 하늘에 떠 있는 뜨거운 태양도 불타 없어지고, 생물들을 수없이 멸절 되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다 낡아지고, 해어지고, 쓰러지고, 분해됩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그 누가 예수님과 같습니까? 예수님은 온 우주에서 가장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22절을 보시면 만물이 예수님의 발 아래 복종합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계신 왕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만물 가운데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23절 봅시다. 그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그분께 붙어야만 살아 있고, 자라나며, 활동하는 유기체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 분의 몸으로써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주님께서 교회에 충만하게 계십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장하고 자라감에 따라서 이 세상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 채워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손과 발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역할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사랑과 정의를 세상 가운데서 실천하며 살아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하게 되는 것이 바로 교회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