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2 특별새벽예배 [RESET YOUR LIFE] (4) RESET을 위한 3가지 질문

 

(시 145:14) 주님은 넘어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붙들어 주시며, 짓눌린 사람은 누구든지 일으켜 세우신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성으로 모입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성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유월절 축제가 가까이 오면 예루살렘에 가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이 여리고 성을 지나가게 됩니다. 축제와 같은 절기가 가까워지자 도시는 기쁨과 흥미진진한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에 미소와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서로 유월절을 축하하느라 바쁘게 보냈습니다. 그 여리고 도시에는 바디메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축제를 즐기고 있으나, 그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두 눈이 먼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길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 길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막 10: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고대사회에서 장님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님인 바디메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걸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 조각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바디메오가 구걸하기 위에 길 옆에 앉아 있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그런데 성경을 불과 몇 구절만 더 읽어가면 그가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막 10: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바디메오야 말로 인생을 RESET 한 사람입니다. 그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길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그가 평생 가졌던 모든 꿈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혹시 길 가에 앉아 무력하게 하루를 보내던 바디메오처럼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 앞에 무력하게 앉아만 있을 수밖에 없지는 않습니까? 바디메오는 우리가 길 옆에 앉아 있지 아니하고, 다시 길로 돌아오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인생을 RESET 하는 3가지 질문을 보여줍니다.

 

첫째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곳이 내가 머물러야 하는 것인가? 아님 떠나야 하는가?’ 우리가 가고 싶은 목표 장소가 있다면, 제일 먼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부터 알아야 합니다. 바디메오는 자신의 현주소를 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일 구걸하고 동냥하는 삶이 뭐 재미가 있었겠습니까?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죽지 못해 살고, 마지 못해 나와 동냥을 일 삼고 직업 삼아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는 그대로 살다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고 싶었습니다. 길 옆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위를 걷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제일 먼저 물어보신 질문이 바로 “Where are you?”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며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물어보신 것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 그들 스스로 어떤 형편에 처하게 되었는지 볼 수 있도록 알기 원했기 때문에 물어보셨습니다.

동일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같은 질문을 물어보십니다. “Where are you?” 우리 삶을 RESET 할 때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실 때, 아담처럼 “제가 하나님을 피해 숨어 있습니다.”하고 말하며 하나님 앞에서 숨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거기서부터 돌이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숨어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고, 주님과 연결되어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숨어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RESET이 필요한 상황인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숨어 계십니까? 부정적인 과거입니까? 지우고 싶은 과거입니까? 미운 사람입니까? 후회할 행동으로 실수를 저지른 사람입니까? 우리는 과거로부터 숨고, 사람으로부터 숨고, 하나님으로부터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내면의 외로움을 숨기기 위해서 산만하게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생의 공허함과 허무함을 숨기기 위해 항상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무언가를 보며 숨어 살지는 않습니까? 재설정이 필요합니다.

“Where are you?”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내 몸, 내 육체가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하십시오. 또 내 감정은 어디 즈음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분노인가? 시기인가? 사람에 대한 강한 미움인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인가? 외로움인가? 관계적으로 나는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하고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어디 지음 있는가? 하나님께서 내가 하라고 명령하신 일들을 하고 있는가? 영적으로 나는 어디 있는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가? 오늘 이 새벽 고요하게 하나님께 물어보십시오. “하나님 제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제 영혼과 삶이 지금 어떤 형편입니까?”  “(시 139:23-24)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보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급류에 힘없이 떠내려가는 나무처럼 누군가에 의해 혹은 무언가에 의해 힘없이 떠밀려 살아가는 인생은 아닌지 점검하십시오. 인생 재설정을 위한 첫 번째 질문은 “내가 어디에 있습니까?”입니다.

 

두번째 질문은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듣는 사람이 우리 삶의 방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막 10: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막 10: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바디메오는 “주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시끄러! 조용히 해!”하고 그를 말리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군중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목소리만 듣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0: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였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살아갑니까? 예수님의 음성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음성입니까?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자 세상이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지 마. 가만히 있어!” 세상의 음성과 예수님의 음성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상은 소리칩니다. “조용히 해! 우리를 따라 살아!” 그러나 예수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이십니다. Instagram, Facebook, Twitter, 케이블 뉴스, 유튜브 이 모든 것이 세상이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소리지르는 곳입니다. “예수님 그만 찾고, 이렇게 살아!” 세상은 크게 외치지만 예수님은 부드럽고 고요한 목소리로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세상의 큰 외침에서 잠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에서 벗어나야 예수님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큰 소리로 우리를 두렵게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왜 여리고 사람들이 바디메오가 소리지르는 것을 말렸을까요? 유월절은 축제의 날이거든요? 여리고는 멋진 도시거든요? 그런데 맹인이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분위기를 다 망치고 있거든요. 좋은 날을 나쁘게 만들고 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을 찾는 바디메오를 보고 “조용히 좀 해라”하고 소리치며 그를 나무랐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을 찾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셋째, “나는 무엇을 구하는가?”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메오에게 물으신 질문입니다. “(막 10: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막 10: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고, 바디메오는 나는 보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도 똑 같은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으십니까? 바디메오는 예수님께서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란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너가 구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것을 내가 능히 이루어 줄 수 있는 존재임을 너는 믿느냐?”

때로는 구해야 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믿음이 없어서 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기도로 구해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서 구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것이야 말로 주님께 기도해야 할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으실 때, 우리가 바디메오가 믿음으로 구한 것과 같이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바디메오와 같은 치유를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싶다면, 믿음을 가지고 구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주님으로부터 듣기 원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것을 원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이것을 주님께 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