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신 하나님께서는 돌이나 나무로 만든 집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무한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머무실 만한 사이즈의 집을 사람이 지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성전에 머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인은 1절에 “그의 터전이 거룩한 산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터전’이란 단어는 근거, 토대, foundation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이 바로 거룩한 산에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거룩한은 성전이 지어진 곳인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들과 교제하기 위하여 인간의 역사에 나타나신 사건은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우리가 창조주의 뜻을 깨닫고, 그 분의 임재 안에 살아가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그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란 한 도시에 지어진 성전이란 하나의 건물을 자신의 처소를 삼으시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었고 또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2절에 시인은 여호와께서 야곱의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고 노래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온이 곧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거처’란 땅이나 집을 뜻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성소’를 뜻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전국에 산당이라고 불리는 예배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는 본래 가나안 족속들이 그들의 이방 신을 예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당을 제거하고 오직 예루살렘에 지어진 성전에 있는 제단에서만 제사 드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산당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동시에 이방 우상들을 함께 섬기기도 했습니다. 산당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순결함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이후 남유다 왕국 역사 가운데 산당을 제거한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두 왕 밖에 없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시온을 사랑하신다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예배의 장소로 택하셨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이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온 세상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성전을 찾았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곳에 머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집이나 가게나 학교나 회사에서도 하나님은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교회와 같이 특별한 공간이 있어 하나님께 마음 모아 예배하고, 주님께 기도하며 주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거쳐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 다른 곳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교회를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 날 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거하기 보다 내 하나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사오니” 하고 고백했던 다윗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언제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더욱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3절을 보면 시인은 시온을 [하나님의 성]이라 언급하며 세상 사람들이 시온 성을 가리켜 ‘영광스럽다’하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왜 시온성이 영광스럽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도 우리들을 보며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87: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여기서 ‘라합’은 애굽을 의미하며, ‘구스’는 에디오피아를 의미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애굽, 바벨론, 블레셋, 두로, 에티오피아 사람 모두가 시온 출신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민족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애굽에 거주하던 다른 민족들도 그들과 함께 나왔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다른 주변 민족들도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둥병에 걸린 아람 장군 나아만도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피부병이 다 나은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시인은 이스라엘을 뛰어넘어 사방의 온 열방과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을 봅시다. “(시 87: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직접 열방에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열방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즉 많은 이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불러 모으실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등록하시고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도 시온에서 났구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열방이 시온에서 나옵니다. 즉 열방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합니다.
7절을 보니 노래하는 자, 흥겨운 악기와 노래 소리에 춤을 추며 뛰어 노는 자들이 다 나와서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시온에 있습니다”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기쁨의 근원이 시온에서부터 나온다는 고백입니다. 즉 이스라엘과 열방이 시온 성에 임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춤추며 경배하는 모습으로 시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방 나라들도 시온처럼 여호와를 섬긴다는 이 표현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지금 우리 주변에 이방 나라들처럼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주님을 함께 섬기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기쁘고 아름답겠습니까?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한 그 날이 오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과 날마다 기쁨의 교제 가운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