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3 당황스러운 은혜 (룻기 2장 1-13절)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한참 동안 이삭줍기를 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보아스는 룻에게 식사를 함께하자고 초대하였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모르고 따르지 않는 이방인들이 부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을 자기 밭에서 일하도록 허락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을 그녀를 생각하여 식사의 자리로 그녀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제가 어제 룻기는 흉년과 죽음, 고통과 눈물로 시작하지만, 책 전체에 인애가 가득 넘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룻은 가난한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함께 식사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녀에게 점심을 나눠주고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얼마나 풍성하게 나누어 주었는지, 룻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룻은 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삭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섰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사환들에게 룻이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그녀를 쫓아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단에서 이삭을 조금씩 떨어뜨려서 룻이 더 많이 주울 수 있게 하고, “왜 이렇게 많이 가져 가느냐?”하고 그녀를 꾸짖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보아스는 가난한 나오미와 룻을 위해 큰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보아스가 댓가를 바라고 이와 같은 자비를 베푼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나오미와 룻은 아무것도 보아스에게 해줄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자비의 정신을 발휘하여 나눔에 적극적으로 힘썼습니다. 우리가 보아스와 같이 넉넉한 나눔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과 같이 우리들도 이웃들에게 선대와 나눔을 베풀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그녀의 시모에게 베푼 선대에 화답하며, 하나님의 선대가 자신을 통하여 이뤄지도록 룻을 선하게 대했습니다.

17절을 보니, 성실한 룻은 저녁까지 해가 져 캄캄하여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까지 일했습니다. 그녀가 주운 것을 보니 보리가 한 에바 즈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에바]는 밀가루, 보리와 같은 곡식을 재는 단위입니다. 한 에바는 14-23kg 정도 됩니다. 성인 남성 하루 평균 양식이 0.54kg 정도 됩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보리 한 에바는 두 사람이 대략 20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사환들처럼 곡식을 떤 것이 아니라, 곡식을 떨고 땅에 떨어진 남은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많은 양을 거둔 것이죠. 따라서 그녀가 이처럼 많은 양의 곡식을 룻이 거두게 되었다는 것은 보아스의 종들이 그 주인의 명령에 따라 많은 양의 이삭을 일부러 땅에 떨어뜨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거운 보리 보따리를 어깨에 매고 집으로 돌아가는 룻의 표정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집에 도착한 룻은 자신이 주어 온 곡식을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낮에 보아스가 점심으로 나눠 주었던 남은 빵을 시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가지고 온 많은 곡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어디서 이삭을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이처럼 생각하여 준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베푸시기를 바란다.” “네 어머니, 오늘 제가 가서 일한 밭의 주인 이름은 보아스라고 합니다.” 이 때 나오미의 대답을 한 번 읽어봅시다. 20절 말씀입니다. “(룻 2: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그는 틀림없이 주님께 복받을 사람이다. 그 사람은, 먼저 세상을 뜬 우리 식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더니,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한결같이 자비를 베푸는구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운 사이다. 그는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다!” 20절에서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를 [기업 무를 자]로 소개했습니다. “기업 무를 자”라는 표현은 레위기 2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와 가문마다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땅은 결코 남에게 양도하거나 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매우 가난해져서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생겼습니다. 레위기 25장은 어떤 사람이 매우 가난해져서 땅을 팔게 되었다면, 그의 가까운 친척이 그를 위해 그 땅을 다시 사들여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친척은 가난해서 팔아야 했던 그 땅을 사서 본래 땅 임자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베들레헴에 찾아온 흉년 때문에 나오미 남편 엘리멜렉은 가족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사 갔습니다. 아마도 그 가운데 엘리멜렉에게 속한 땅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멜렉 가문이 잃어버린 토지를 사서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기업 무를 자] 바로 ‘보아스’입니다. [기업 무를 자]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합니다. 이 고엘이란 단어가 이사야 49장 7절에서는 ‘구속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엘 되십니다. 죄로 인해서 멸망할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주님의 보배로운 피 값으로 사셨습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빼앗겼던 자유와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룻기에서 가난하고 굶주릴 수밖에 없는 나오미와 룻을 구원해 준 기업 무를 자 즉 고엘 보아스의 모습은, 우리 성도들의 고엘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 합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아스가 베푼 또 다른 은혜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어머니, 그뿐이 아닙니다. 보아스는 그가 데리고 있는 젊은 남자 일꾼들이 곡식 거두기를 다 끝낼 때까지, 제가 그들을 바싹 따라다니며 이삭을 거둘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얘야, 그가 데리고 있는 젊은 여자들과 함께 다니는 것이 좋겠구나.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다른 밭으로 가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23절을 읽겠습니다. “(룻 2: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은혜는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허락해 준 것은 그가 나오미와 룻에게 지속적인 인애를 베풀었음을 나타냅니다. 룻은 보리 거두기뿐만 아니라 밀 거두기가 끝날 때까지도, 보아스 집안의 젊은 여자들을 바싹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러면서 룻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낙담과 절망 뿐인 텅빈 인생처럼 보였던 나오미와 룻에게 보아스라는 한 인물의 인애를 통하여 기쁨이 임하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삶에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을 섭리 가운데 사용하셔서 우리 일상 속에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은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보아스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위해 곡식을 나눠주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인애를 베풀어 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오늘도 사랑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