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시대에서 고아와 과부, 나그네, 이방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정부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복지 정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고대 사회에서 가난은 말 그대로 집 밖에서 굶주린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레위기와 신명기에는 사회 빈곤층인 고아, 과부, 나그네, 이방인들을 위한 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곡식을 거둘 때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않습니다. 대신 어느 정도 이삭을 남겨 둡니다. 또한 추수할 때에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고아, 과부, 나그네 이방인, 그리고 그 밖에 모든 가난한 이웃들이 줍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고아, 과부, 이방인 거류민들처럼 농사지을 땅이 없는 사람들도 추수 때 곡식을 거두어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제공했습니다.
베들레헴 땅에 찾아온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떠났던 나오미는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베들레헴에 찾아왔던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나오미는 첫째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베들레헴 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 둘 다 가난한 과부가 되었습니다. 며느리 룻은 먹을 곡식을 구하기 위해서 앞서 언급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이삭줍기를 하기 위해서 밭으로 갔습니다. 이 때 성경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3절 말씀을 봅시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우연히’라는 단어는 물론 1차적인 의미는 ‘우발적인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을 때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도와 생각 없이 선택했으나 낮은 확률로 어떤 특정한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룻의 걸음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삶도 주님의 그 다스림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삶에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완벽하신 다스림 안에서 모든 것은 진행됩니다. 때로는 우리들의 삶에 일어난 고난과 아픔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재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야 했을 때, 과연 그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인도로 생각했을까요?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갈 때 전쟁의 노예가 되었던 다니엘은 과연 그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인도로 생각했을까요? 오늘 본문 속 나오미를 보십시오. 흉년 때문에 조국을 떠나 모압으로 갔는데 거기서 남편과 두 아들 모두 잃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녀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며느리 룻이 나가서 땅에 떨어진 이삭을 주어 와야만 나오미와 룻이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과연 나오미가 이 암담한 상황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성경에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처럼 보이는 상황들로 가득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100세 나야 했던 상황, 모세가 자신을 죽이려는 바로 왕을 피해 광야로 도망쳐야 했던 상황,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들어가야 했던 상황, 소년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야 했던 상황 등 모두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우리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란 것을 말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다스림 가운데 일어난 필연적인 사건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고난과 고통처럼 보이는 그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남의 밭에 가서 땅에 떨어진 어쩌면 한 번 밟혔는지도 모르는 곡식을 주어다가 연명해야 했던 가난한 룻의 처지를 보십시오. 얼마나 불쌍한 여인입니까? 그러나 곡식을 줍기 위해 밭에 들어가야 했던 이 우연한 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보아스와 룻의 만남을 통해 다윗의 가문을 일으키시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펼쳐가고 계십니다.
룻은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적인 상황 속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인 보아스가 소유한 밭으로 들어가 곡식을 줍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절 말씀을 보니, 또다른 우연이 일어납니다. 4절을 보면 “마침”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때마침 보아스가 와서 자신의 밭에서 일하고 있던 모압 여인 룻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 역시 하나님의 완벽하신 계획 안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보아스는 처음 보는 낯선 여인이 자신의 땅에서 곡식을 줍고 있는 것을 보고는 사환들에게 룻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저 젊은 여인은 뉘 집 아낙인가?” “나으리. 저 젊은 여인은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사람입니다. 일꾼들 뒤를 따라다니며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도록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오두막에서 쉰 것 말고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환들의 대답을 통해서 룻이 얼마나 성실한 여인인지 엿볼 수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빛이 비추는 중동 지역에서 일하는 것은 얼마나 더웠겠습니까? 게다가 밭에 떨어진 곡식을 줍기 위해서 허리를 한참 숙여야 합니다. 아니면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일해야 합니다. 몸에 무리가 올 법도 합니다만, 룻은 짧은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 것 빼고는 아침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보아서는 이미 소문으로 룻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기 위해서 그녀의 조국과 민족을 다 뒤로하고,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베푼 그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보아스는 자신이 룻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결심합니다. 8-9절 보아스의 말을 들어 봅시다. “여인이여, 나의 말을 잘 들으시오. 이삭을 줍기 위해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에서 주우시오. 내 일꾼들 뒤만 따라다니시오. 그들이 가는 밭을 잘 보고 그 뒤를 따라가시오. 나의 일꾼들에게 당신을 건드리지 말라고 일러두었소. 목이 마르거든 물항아리 있는 곳으로 가서 일꾼들이 길어 온 물을 마시도록 하시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곡식을 거둘 때 일꾼들이 지나가고 땅에 떨어진 남은 곡식을 가난한 사람들이 거두도록 하는 것이 율법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모든 땅 주인이 다 이 법을 준수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욕심쟁이 땅주인들은 땅에 떨어진 이삭도 다 주어 갔습니다. 게다가 밭에서 일하는 일꾼들 중에는 곡식을 거두기 위해 찾아온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가난한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들도 흔치 않았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자신의 땅에서 이삭을 줍는 동안 이와 같은 나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그의 일꾼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룻이 목마르거든 물항아리에 있는 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 당시 물은 아무 곳에서나 발견되는 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멀리 우물에 가서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힘겹게 물을 길어야만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이삭을 주어야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는 가난한 룻에게 물은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값비싼 음료나 다름없었습니다. 따라서 보아스가 룻에게 마음껏 물을 마시도록 허락한 것은 큰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보아스의 큰 은혜에 깜짝 놀란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습니다. “저는 한낱 이방 여자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 같은 것을 이렇게까지 잘 보살피시고 생각하여 주십니까?” 룻은 당황스러워하며 어찌 자신과 같은 모압 여인 즉 이방 여인에게 잘해주는지 그 영문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말합니다. “나는 당신이 남편을 잃은 뒤에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룻기는 참으로 흥미로운 책입니다. 이 책은 흉년으로 시작하고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또한 룻기는 눈물과 애곡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룻기에는 인애 즉 사랑이 가득 넘쳐 납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린 나오미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봉양하기로 마음먹은 룻의 인애, 가난한 나오미와 룻이 굶지 않도록 자신의 땅에서 마음껏 곡식을 줍도록 허락해준 보아스의 인애, 보아스와 룻의 결혼으로 아들을 낳게 하심으로써 나오미의 괴로움을 기쁨으로 바꿔 주시는 하나님의 인애… 책 속의 주인공들은 전혀 기대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인애가 룻기 곳곳에서 넘쳐납니다. 그래서 룻기는 흉년, 죽음, 눈물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탄생, 기쁨, 풍성한 소망으로 끝이 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룻기는 바로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흉년을 맞은 인생, 슬픔과 괴로움 뿐인 삶…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가 막힌 은혜가 있습니다. 생각치도 못하게 임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아스 앞에 무릎 꿇은 룻과 같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는 이러한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죄사함과 구원,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은 자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룻과 보아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오늘 이 하루 우리들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애를 베푸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