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9편은 [아삽의 시]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삽은 다윗 왕 시대에 찬양대 대장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그 내용이 성전이 더럽혀지고,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은 다윗 왕과 아삽의 시대 보다 약 400년 후에 바벨론의 침입으로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79편의 표제로 기록된 [아삽의 시]를 아삽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79편은 아삽의 후손 중 한 사람으로써 성전에서 음악으로 봉사하던 이가 저자인 시편으로써, 그는 적군의 공격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보며 비통한 심정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동시에 원수 바벨론에게 보복해 주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봅시다. “(시 79: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1절을 보면 지금 예루살렘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율법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감으로 부정한 자들로 여겨지기에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할례도 받지 않은 부정한 바벨론 병사들이 성전에 들어와 성전을 짓밟음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졌습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바벨론 군인들은 성전의 기물들을 탈취해 갔고, 성전을 파괴하고 불살라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시인은 크게 아파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니,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져서 돌무더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머물고 계신 거룩한 도시이며 또한 아름다운 곳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사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2절에 나타난 예루살렘의 참상을 봅시다. “(시 79: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시 79: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시체가 공중의 새에게 밥이 되고, 땅의 짐승들의 먹이가 되었다는 시체가 장사되지 못하고 땅에 방치 되어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죽어서 그 시체가 동물들에게 잡아 먹히는 것은 고대 근동 문화에서 큰 저주와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바벨론 군인들이 쳐들어와서 예루살렘 사방에서 칼과 창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임으로 피가 도시에 물 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매장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실제로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공격당할 때 무려 1년 6개월 동안 포위 공격을 당했고, 이 때 얼마나 많은 사상자들이 생겨났는지 예루살렘에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이 이처럼 바벨론에 의해 돌무더기가 되고, 수많은 시체들의 썩는 냄새로 진동하는 상황 속에서 이방 나라들은 고통과 신음에 빠진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1-4절까지 바벨론에 의해 망한 것이나 다름 없는 예루살렘의 상황을 언급한 시인은 이제 5절부터 하나님께서 진노를 멈추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5절을 봅시다. “(시 79: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남 유다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버리고, 탐욕과 죄악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남 유다는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진노로 이처럼 처절하게 멸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진노를 거두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께 크게 2가지를 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이고 둘째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공격한 원수들에게 복수해 주소서’입니다. 8절을 보면, 시인은 그의 조상들이 지은 죄를 기억하지 마시고, 긍휼히 여기사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남유다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인해 가련하게 되었습니다. 9절에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는 말은 바싹 말라 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벨론의 침입으로 인해 남유다가 심각한 결핍과 곤난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9절에 시인은 하나님을 가리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하고 불렀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도시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도시가 불에 타 버리고 재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길거리에 시체들이 매장 되지 못한 채 쌓여 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하실 수 있음을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당한 수치와 고통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시인은 하나님께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백성을 회복하고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신이 여호와 하나님임을 열방이 다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대로 그들이 멸망한대로 두시면 결국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 가운데 조롱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10절 말씀처럼 열방이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고 조롱하며 여호와는 그의 백성을 바벨론의 손으로부터 구할 힘이 없는 신이었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할 것입니다. 시인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의 영광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이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했습니다. 동시에 시인은 남 유다 백성을 피 흘리게 한 바벨론에게 복수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욕하고 조롱하던 원수들에게도 그 죄악을 칠 배나 벌로 갚아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한글 개역개정성경에는 없지만, 13절 말씀을 히브리어로 보면, ‘그러하면’이란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시인이 하나님께 구한 두 가지 기도 제목,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거두어 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 그리고 이스라엘을 피 흘리게 만든 바벨론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고 조롱했던 모든 원수들을 심판하여 주신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응답해 주신다면, 주님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이 양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하고, 주의 행하신 일을 오는 세대에 끊임없이 전하며 찬양할 것임을 약속했습니다. 시인의 현실은 전쟁의 참혹한 절망의 현장에 있으나,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구원하실 것을 신뢰했고, 원수들에게 보복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아픔과 신음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란 믿음을 갖고, 이 큰 일을 이루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주의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도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돌아서자 이처럼 무시무시한 심판을 당하여 비참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돌아가 죄를 회개하며 회복과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버리고 살아가면, 우리들도 이스라엘처럼 철저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혹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벌을 받아 어려움에 처했다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다시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하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다시 받아 주시고,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