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하루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그리고 세족식을 가지셨습니다. 또한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고별설교를 통해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 말씀하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설교를 마치신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하나님께 기도 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요?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요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여기서 “때가 이르렀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를 의미 합니다. 본문 속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하루 앞두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과 공의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 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아니하고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십자가는 예수님 자신에게도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과 사명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자신에게 영광이 돌려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시려는 선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2절 말씀을 봅시다.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갖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 나오는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환경과 상황에 의한 선택 없는 강요된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들의 영생을 위한 자발적인 죽음이었습니다.
3절 말씀을 봅시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안다’는 표현은 단순히 지식적인 앎이 아닙니다. 이것은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 주님과 연합하는 체험적인 지식 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죄인이었던 우리가 죄사함을 입고 영원한 생명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복음의 능력이요 신비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 놀라운 영생의 은혜를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으나, 본래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우리들의 구원사역을 위하여 잠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제 그가 창세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 다시 돌아가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봅시다. “(요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구원 사역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다시금 자신을 영화롭게 해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오늘 기도를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비춰집니다만, 사실 그 내용을 깊게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망가진 이 세상이 회복되고, 죄로 신음하는 우리들의 삶이 회복되고, 죽어가야 하는 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열망하는 기도를 드리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다 포기하시고 죽기까지 순종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과 목적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돌려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과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우리의 사명 완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구원이란 사명을 위하여 살아가신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살아가신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졌던 것처럼, 우리들도 영혼을 구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난 3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믿었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즉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진리를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자신의 구원자 됨을 믿고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사람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위해 기도하신 이유는 이제 내일이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이후 제자들 곁을 떠나야 하기 때문 입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 예수님은 내일이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됩니다. 이후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여전히 이 세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 하셨습니다. 특별히 11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간구하시며 “저희를 보전하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전하다’라는 기도제목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저희와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주님의 간구 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제자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생활 하신 것처럼, 그의 제자들도 자신과 같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서 간구하신 것이죠.
특별히 12절을 주시면, 주님은 제자들 모두를 보전해 달라는 기도를 하시며 제자들 중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을 제외시키셨습니다. 이 멸망의 자식은 누구일까요? 바로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 넘긴 배신자 가룟 유다 입니다. 예수님은 이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제자들을 보전하셨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본문에 사용된 ‘보전하다’란 말은 ‘굳게 붙잡다’, ‘보살피다’란 뜻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굳게 붙잡아 주시고 그들을 완전하게 지켜 달라고 간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이 보호 받아온 것과 같이, 동일한 하나님의 능력이 제자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직접 의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 제자들의 보호해 주시기를 집적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아 채찍질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자신을 미워한 것과 같이 제자들도 미워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14절 말씀 입니다. “(요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이토록 간절하게 기도하신 이유는 세상이 자신을 미워해서 핍박한 것처럼,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미워하고 핍박할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 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 받을 때,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사실 요즘과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삶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 세상에 날 도와줄 사람이 하나 없다는 사실에 외딴섬에 버려진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늘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결코 외딴섬에 버려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기 바로 전 날밤에도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보호해주시고 굳게 붙잡아 주시기를 부탁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간절한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대로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이 세상에 홀로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굳게 붙잡아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했듯이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 주님을 핍박 했듯이 세상은 우리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믿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해 주신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큰 격려와 위로가 되는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는 모두 응답 받을 것이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교회 성도 여러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하루 전까지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 구주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 때론 우리들도 지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로 우리는 얼마든지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