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9 속죄일의 상세 규례 (레위기 16장 11-22절)

오늘 본문은 속죄일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죄로 인하여 오염된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날입니다. 쉽게 말하면 죄로 더러워진 성소를 대청소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신 성소를 함부로 출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들의 아들들이 아무 때나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이곳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인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년 중 가장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날이었기에 대제사장은 먼저 자신을 위하여 속죄 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번제물로 드릴 숫양 한 마리를 바쳐야 했습니다. 비록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람이지만,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죄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도 먼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평상시에 입던 화려한 옷을 벗고,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속죄일은 죄로 인한 슬픔과 수치를 씻어내는 날이기에 평상시 대제사장으로 그가 가진 영광과 명예를 버리고 겸손한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게다가 평상시에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은 손과 발만 씻으면 되었으나, 속죄일 만큼은 제사장도 온 몸을 다 씻은 후에 예복을 입었습니다. 이와 같은 절차를 다 드린 이후 그는 자신을 위하여 제물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11절을 함께 봅시다. “(레 16:11)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대제사장은 먼저 그 자신과 제사장의 가족들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수소를 잡아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후 제사장은 제단에 피어 있는 숯을 향로에 가득히 담고, 향가루를 두 손으로 가득 떠서 성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12-13절을 봅시다. “(16:12)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16:13)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향로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게 함은 연기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죄인인 제사장을 가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제사장이라도 하나님을 보면 죽기 때문에, 연기를 통하여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속죄소를 가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가지고 간 향로에서 피어 오른 연기가 지성소 전체를 가득 채웠음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후 14절을 보면 대제사장은 속죄 제물로 잡은 수소의 피를 받아 손가락으로 찍어 속죄소의 동쪽 부분과 앞 부분에 7번 뿌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성소에 있는 다른 기구들, 예를 들면, 분향단 같은 경우에는 피를 뿌리기도 하지만, 대제사장이 직접 기구에 손을 대어 피를 바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거룩한 속죄소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손으로 만지지 않고, 오직 피만 뿌렸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임재 하시는 곳이기에 다른 성소의 기구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머물고 계시는 성소가 어디 입니까? 바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무엇으로 정결케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구약에서는 성소를 정결케 하는 이 일을 매년 반복해서 진행했습니다. 대제사장은 매년 수소를 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영원한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우리 마음의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해서 이제 더 이상 추가적인 제물을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면 우리 모든 죄를 씻어내고 정결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렇게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위하여 수소를 드린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도 드렸습니다. 15절을 보면 그는 수소의 피를 가지고 속죄소에 뿌렸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 제물로 바친 염소의 피를 가지고 속죄소 앞에서 뿌렸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대제사장은 성소를 성결하게 해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성소가 부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속죄일은 단지 오염된 성소만 정결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대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문제도 함께 해결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이후 대제사장은 지성소를 정결케 했듯이, 성소도 정결케 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보면 성소 안에는 오직 대제사장 밖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평상시에는 다른 제사장들도 성소까지는 드나들 수 있었으나, 속죄일 만큼은 오직 대제사장 한 사람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과정이 다 끝나면, 뜰에 있는 제단을 정결하게 해야 했습니다. 이 때는 수소와 숫염소의 피를 받아 제단 뿔에 돌아가며 발랐습니다. 또한 제사장의 손가락으로 제물의 피를 찍어 제단 위에 피를 뿌렸습니다. 속죄일에 정결케 함에 쓰인 것이 다름 아닌 제물의 피라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마찬가지로 우리 죄악을 씻어내고 정결하게 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그 피가 우리 모든 죄를 능히 씻어냅니다.

지성소와 성소와 제단을 위한 속죄가 다 마친 후에는 살아 있는 염소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죄를 숫염소에게 전가하였습니다. 21절을 보면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라고 했습니다. 이는 숫염소가 이스라엘 공동체와 대세장이 지은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 이 숫염소를 광야로 보냈습니다. 이 염소를 끌고 광야로 가서 놓아준 사람은 옷을 빨고 목욕한 다음에야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놓아준 염소가 16장 10절에 나온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낸’ 바로 그 숫염소 입니다. 여기서 ‘아사셀을 위한 것’이라는 표현은 정확히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양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사셀’을 떠나 보낸 염소가 가게 될 광야의 한 지역 이름이라고 해석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사셀’이란 단어의 의미를 “떠나 보내는 염소”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아사셀’이 염소를 떠나 보낸 장소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두 마리의 염소 중 한 마리는 죽여 그 피를 죄를 씻는 일에 사용했고, 나머지 한 마리를 대제사장이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죄를 대신 지고 가도록 했습니다. 유태인의 전승인 ‘미쉬나’에 의하면 이 아사셀 숫염소는 다시 진으로 돌아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였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진 숫염소가 죽은 것이죠. 보냄을 받은 염소 즉 아사셀은 신약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 밖으로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피 흘리시고,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와,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는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오늘도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올려 드리는 귀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