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2 제사장 위임식(1) (레위기 8장 1-21절)

 

제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중간에서 섬기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거룩하게 구별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제사장을 세우기 위한 위임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임식의 모든 절차와 의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 위임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자격이 필요 했습니다. 먼저 그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레위 지파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또한 레위 지파 가운데서도 아론의 직계 자손이어야만 했습니다. 또한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자격들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거룩한 사명을 위하여 구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위임식을 앞두고 있는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몇 가지 절차와 의식을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먼저 6절을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었습니다. 이 물은 호숫가나 우물에 있는 물이 아니라, 성막 안에 있으며, 성소 앞에 있는 물두멍에 있는 물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손과 발만 씻는 것이 아니라 온 몸 전체를 정결하게 씻어야 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 위한 위임 의식에 앞서서 온 몸을 씻어냄으로 육체적인 부정을 정결하게 함으로써 죄의 부정함을 씻어버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어야 하는 것과 일맥상통 합니다. 더러운 죄를 가지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거룩한 사명을 위한 의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정결함이 우선시 되지 않으면 거룩한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이 예수의 보혈로 정결케 되어 있지 않으면, 거룩한 사역을 위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입을 수 없습니다. 거룩한 일을 위해 쓰임 받기 위해서는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7-9절을 보면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한 후,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 의복을 입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사장의 공식 복장은 총 7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흰 세마포 속옷, 띠, 청색 겉옷, 에봇, 흉패, 머리에 쓰는 관, 금패 입니다. 제일 먼저 흰 세마포 속옷을 입습니다. 그 다음 허리에 띠를 띱니다. 청색 겉옷을 걸쳐 입습니다. 그 위에 에봇을 입습니다. 에봇에 흉패를 붙이고, 흉패 속에 우림과 둠밈을 넣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에 흰 색 세마포 관을 쓰고, 관 정면에 ‘여호와께 성결’(히브리어로 코데쉬 라예호와)라고 글자가 써 있는 금패를 부착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입는 옷은 그의 역할과 신분을 부여합니다. 예를 들면, 경찰관이 입는 제복은 국민을 섬기는 그의 역할을 나타내며, 동시에 지나가는 그 어떤 차량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그에게 부여 합니다. 법관이 입고 있는 옷은 그에게 재판을 하게 하며, 의사가 입고 있는 가운은 환자들을 진료하는 역할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의복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과 신분을 가져다 줍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제사장이 입은 옷 역시 그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이제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중요한 직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가 입는 옷을 통해 그의 역할과 신분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옷을 보고 그가 어떤 부류에 속한 사람인지 판단하곤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사장들이 거룩한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의복을 입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옷은 면이나 삼베와 같은 실이나 직물로 만들어진 옷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입어야 하는 옷은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이라는 옷입니다. 성도가 거룩함을 입게 될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역할을 나타내며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게 되는 놀라운 권세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옷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옷입니다. 세상에는 겉으로는 깨끗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 있는 영혼은 온통 상처 투성이며, 죄로 인하여 더럽혀지고, 추악하고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하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더러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롭고 깨끗한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3-24절 말씀처럼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옷 입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고급 양복을 입은 사람일지라도 진흙탕에서 뒹군다면 그 사람의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지으면 또 다시 우리의 옷이 더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며, 지난 날 지은 죄를 다시 회개하며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인자는 아침마다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 더러운 옛 옷을 벗고 깨끗한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계십니다.

새 옷을 입고 진흙탕에 뒹구는 사람은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옷을 입고 진흙탕과 같은 죄에 뒹구는 것 역시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입은 옷이 더러워지면 벗어 버리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마찬가지로 날마다 죄로 오염된 우리의 옷을 벗어 버리고 거룩한 새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우리 속에 있는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무장할 때 가능해집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더러운 옷을 벗는 것이요. 말씀으로 영혼을 무장하는 것은 거룩한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혹시 눈에 보이는 옷은 자주 갈아 입고 있지만, 더러워진 영혼의 옷을 입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새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지금도 초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하루 우리 마음 속 죄를 회개하므로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거룩한 새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명을 감당 했듯이,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거룩한 지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제사장을 거룩하게 구별하시기 위하여 그 위에 관유를 붓도록 하셨습니다. 관유란, 감람유, 즉 오늘날로 말하면 올리브 기름에, 육계, 창포, 계피 등의 향품을 섞어 만든 기름입니다. 관유는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오직 종교적 의식을 위해서만 특별하게 제조되는 거룩한 기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 기름을 성막과 법궤, 분양한, 진설병상, 등대 등 성소와 지성소에 있는 주요 기물들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왜 관유를 발랐을까요? 비록 이것들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제작된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것이므로 관유를 바름으로 이들을 성별 한 것입니다. 즉 관유를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됨을 나타내며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한 성막과 그 기물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관유를 바른 것이죠. 그런데 특별히 11절을 보면 단에는 관유를 일곱 번이나 뿌렸습니다. 번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특별한 장소로 하나님께서 예배를 거룩하게 여기시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성막에 기름을 바른 후,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관유를 아론과 그의 자손들의 머리에 부어 발랐습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대제사장으로 섬기게 되는 아론에게 바른 관유는 머리에 부어 그 기름이 그의 턱수염을 적시고 또한 옷까지 흘러 내리도록 흠뻑 부었다고 합니다. 이는 아론이 하나님의 권위와 사역을 공식적으로 위임 받는 나타내며 동시에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태까지 제사장 위임식을 위한 순서들을 잠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두멍에 있는 물로 온 몸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지정해 주신 제사장 의복을 입었습니다. 단순히 옷 하나 걸치는 것이 아니라 무려 7가지나 되는 의복들을 속옷부터 겉옷 그리고 머리에 쓰는 관에 이르기까지 다 갖추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 정도의 의식이면 제사장을 많이 구별한 것 아닐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제사장으로 섬길 아론과 그의 자손들을 죄로부터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아무리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라도 죄를 가지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제사장이라도 제사함 없이는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제사장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릴 때 희생 제물을 최고의 짐승인 수송아지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범죄를 심각하게 여기시고 또한 그의 죄를 가볍지 않게 여기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 값비싼 수송아지를 제사장을 위한 번제 제물로 잡으라고 하신 것이죠. 이제 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희생 제물에게로 전가시키는 상징적인 의미로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 합니다. 안수 후 제물은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피가 제단에 뿌려지게 됨으로써, 제사장 또한 자신이 저지른 죄의 비참한 결과를 깨닫게 되고 겸손하게 죄를 회개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앞서 기름을 번제단에 일곱 번 뿌린 것처럼 속죄제의 제물의 피를 번제단 중심으로 피를 뿌리는 의식이 이루어졌습니다. 번제는 제사 드리는 곳, 즉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곳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 얼마나 거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속죄제 제물을 통해 하나님은 번제단의 모든 부정과 오염을 제거하시고, 제사 드리는 제사장의 죄를 모두 제거 하도록 하셨습니다.

16절을 보면 제물로 사용된 수송아지의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 ‘간꺼풀’, ‘두 콩팥’, ‘기름’을 단 위에서 불 사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번제단에 드려진 기름은 짐승을 살찌게 하는 가장 귀한 부위를 말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기름을 태우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가진 것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충성과 헌신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귀한 것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다 내가 갖는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처럼 나머지 모든 것도 주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7절에 보면 수송아지의 가죽과 고기와 똥은 진 밖에서 불 사르고 있습니다. 이는 훗날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사건에 대한 예표 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위임식 절차들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눈으로만 보면 제사장이 하는 일이 그 다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동물 잡아서 죽이고, 각 떠서 제단에 바치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봉사와 헌신에 앞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셨습니다. 몸을 씻고, 거룩한 옷을 입고, 기름을 바르고, 죄를 사하는 속죄 제사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섬김보다 거룩함이 더 앞서야 함을 의미합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거룩함을 살펴 봅시다. 사역과 섬김에만 치중한 나머지 거룩함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사라진 채 일만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으로 서는 것보다 거룩하게 서 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오늘 이 하루 우리의 사역과 섬김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의 거룩함을 먼저 살펴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