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8 악인의 형통, 의인의 고통 (시편 73편 1-16절)

아삽은 레위 지파 사람으로 다윗 왕 시대에 유명한 찬양대 지휘자였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쓴 시가 총 12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총 73개의 시를 쓴 다윗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시편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아삽 입니다. 아삽과 그의 아들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장막 앞에서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일에 뽑혔습니다. 성경에서 그는 “선견자 아삽”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 아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아삽은 하나님을 악은 행하시지 않고 오직 선을 행하신 분이라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아삽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통적으로 고백해 왔던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삽의 이러한 확고했던 믿음의 고백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2절에 그는 말하기를 (73:2)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아삽이 넘어지는 것은 거의 뒤로 넘어질만큼 치명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과연 선견자 아삽이 무엇을 보았길래 그것이 그의 걸림돌이 되어 이처럼 그의 마음은 실족할 뻔하고 그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을까요?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입니다.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아삽은 늘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는 심판하신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이 세상에 하나님 없이 악하게 살지만 여전히 그들의 인생은 형통한 대로를 걷는 자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삽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속으로 “그래 그러면 저들은 살아 있을 때는 저렇게 행복하게 살지 몰라도 죽을 때가 다가오면 고통스럽게 죽겠지…” 하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어떻습니까? 4-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73: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병도 안 걸리고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눈을 감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73: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아삽이 이 모습을 보고 고개가 옆으로 갸우뚱거립니다. “어라? 악인들이 더 잘 사네? 죽을 때까지 잘 사네.”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이게 뭐지… 왜 악인들이 형통하지? 이상하다? 분명 성경은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복을 받고 악인들은 고통을 당하고 망해야 하는데…이게 어찌 된 일이지…?”

아삽이 다시 악인들을 살펴봅니다. 그런데 정말 하는 행동을 보니 가관입니다. 6절 말씀에 이들은 교만을 아예 목걸이처럼 자랑하며 걸고 다닙니다. 그들의 언어생활은 또 어떻습니까? 8절과 9절 말씀을 보면, “(73: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73: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악인들은 아주 상스럽고 사나운 듣기 거북한 말만하고, 욕설을 내뱉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 난 듯이, 옆에서 듣기 힘들 정도로 자기 자랑만 거만하게 늘어놓습니다. 9절 말씀에 입은 하늘에 둔다는 것은 자신이 무슨 왕이나 신이라도 된 듯 말하는 것이고, 혀가 땅에 두루 다닌다는 것은 세계 유명한 곳은 여행 안 가본 곳이 없어서 자랑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11절 말씀에 악인들이 이 백성들을 유혹합니다. “(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야,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 있냐? 만약 하나님이 계시면 너가 어떻게 그 모양 그 꼴로 사냐?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안 믿는 내가 더 잘 사냐?”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이란 존재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거죠. “이야… 사람이 저렇게 멋있게 살 수도 있구나… 이야 나도 저렇게 한 번 멋지게 살아봤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통하는 악인들의 인생 스토리를 계속 들으며 점차 그들을 부러워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진짜 안 계신 거 아니야…? 아니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내 인생이 이렇게 될 수가 있지…?” 자신의 삶도 저 형통하는 악인처럼 되기를 소망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습니다.

 

아삽이 가만히 보니까 정말로 불경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더욱 더 번영하고 있고, 그들의 부는 날로 날로 쌓여 갑니다. 12절에 아삽이 말하기를 그들은 마음도 항상 편안해 보이고 사는게 저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아삽의 마음에 여태까지 믿음 잘 지키고 신앙생활 열심히 해온 것이 왠지 손해 본 것 같은 후회되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오게 됩니다. (73: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이야.. 그냥 나도 저렇게 한 번 막 살아볼 껄… 진짜 여태까지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교회생활 했을까?” 이러면서 그도 후회가 됩니다.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거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냐…? 이제 됐다… 관두자 관둬…” 이스라엘 백성의 찬양대장인 아삽이란 자가 이 지경까지 간 것이죠. 여러분 아삽이 무슨 신앙이 어리고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평생을 하나님을 따르고 열심으로 섬긴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삽이 이렇게 시험에 들 수 있다면, 우리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14절에 아삽의 속으로 하는 독백이 시작됩니다. (73: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악인은 하는 일마다 형통한데, 반대로 자신은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마음 편한 날이 없습니다.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고, 오래 지속된 병은 나을 기미조차 안 보입니다. 아삽이 자기 삶을 보니까 온통 재앙 뿐입니다. “하나님 안 믿는 저 사람은 돈도 저렇게 잘 벌고 세상 안 부럽게 신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내 인생은 이게 뭔가..” 마음이 낙심이 됩니다. 그래도 아삽은 사람들이 다 존경하는 찬양대 지휘자고 보는 눈들도 많으니까 겉으로는 표현은 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으로는 막 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냥 이 참에 신앙생활 때려 칠까?” 이런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그는 차마 자신이 신앙의 실패자요 믿음의 변절자로 낙인 찍힐까봐 겉으로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삽의 속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는 다르게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의인들이 고통과 슬픔을 겪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헤어나오려고 몸부림 칠수록 더 깊숙이 빠지게 되듯이, 아삽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를 쓸수록 마음만 더 곤란해질 뿐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깊은 고민을 했지만, 찬양대 지휘자니까 예배를 빠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아삽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게 될 때 아삽은 비로소 자신이 고민해 오던 이 문제의 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아십이 무언가 하나님께 메시지를 받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성전에 들어 갈 때 하나님께서 아삽에게 나타나셔서… “아삽아, 아삽아… 내가 지금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통 당함을 놓고 기도하고 있구나… 사실 그건 말이야..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되고 저렇게 해서 저렇게 된 거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삽에게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아삽이 하나님께 직접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의 깊은 고민 속에서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잊고 지내던 중요한 영적 진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자꾸만 반복해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아삽이 성전에 들어갈 때 깨달게 된 진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아삽은 두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첫번쨰는 지금 이 세상이 종착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철도에 비유하면 지금 이 세상은 종착역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잠깐 머물다 가는 기착역이구나.. 아삽이 이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하게 살다가 죽는 순간까지 평안하게 눈을 감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이 끝이 아니기에 죽음 이후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과 심판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록 의인이 오늘까지도 고통 당하고 슬픔 가운데 살아가고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 질병과 가난과 싸우다 눈을 감는다 할지라도 이 세상이 마지막이 아니며 그들에게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승리와 영광스런 그 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아삽은 성전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서 그는 악인의 형통을 보고 부러워하며, 왜 나는 저렇게 살지 못하나 고민하며, 고뇌했지만 오히려 그가 발견한 진정한 축복은 물질적인 부유함이 아니었습니다. 아삽이 발견한 진짜 축복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세상만 물을 다 가져도 하나님이 없으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실패한 인생이구나… 그러나 반대로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 한 분만 내게 있으면 나는 가장 축복받은 인생이 될 수 있구나?! 이 사실을 아삽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큰 고민으로 시작한 아삽 그러나 그의 결론은 시편에서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아, 하나님 한 분만이 진짜 내 복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들도 악인의 형통을 바라볼 때 아삽과 같은 낙심이 마음에 밀려오지는 않았습니까? 악인의 형통과 내 자신의 고통을 비교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가져도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자 예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