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에 있는 장인의 집을 떠난 레위인과 그의 일행은 ‘여부스’라는 이름의 도시 맞은편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부스는 예루살렘의 옛 이름입니다. 다윗이 이 성을 정복하기 전 가나안 사람들이 살 때 이름이 ‘여부스’였습니다. 레위인이 여부스에 도착할 즈음에 날이 저물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레위인의 종이 그에게 더 늦기 전에 여부스에 들어가서 머물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에서 머물 수 없다고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기브아까지 가기로 결정합니다. 기브아는 베냐민 자손의 땅입니다. 이방인의 성읍에서는 나그네로서 대접받기가 어렵고, 게다가 잘못하면 해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부스가 아니라 기브아에 머물기로 결정한 것이죠. 해가 저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위인의 일행은 힘든 여정을 강행하여 기브아로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기브아에 도착한 레위인 일행은 넓은 거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이 부지 중에 나그네를 영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발견하자 즉시 그들을 맞아들여 발도 씻기고 휴식을 취하게 하고 떡과 송아지 요리도 제공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나그네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 또한 창세기 19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역시 자기 동네에 찾아온 나그네들을 집으로 영접했는데 그 역시 하나님의 천사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그네를 보면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신명기 10장 19절을 보면 “(10: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실망스럽게도 기브아 사람들 가운데는 나그네인 레위인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앞서 레위인은 이런 냉대를 당할 것이 싫어서 이방인의 성읍인 여부스를 피해 피곤한 발걸음을 옮겨 왔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기브아 성읍에서는 그 누구도 그를 환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15절을 보면 레위인 일행은 지금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곳은 성문 근처 광장으로 기브아 주민들의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활동이 일어나는 활기찬 장소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장소이죠.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분명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주민들 혹은 다른 볼일을 끝내고 이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이 낯선 레위인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긴 여정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레위인은 몹시도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이처럼 나그네를 무시하고 냉대하는 것은 율법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레위기 19장 33-34절 말씀을 보면 “(19:33)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19:34)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그네에게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나그네에 대한 환대를 거부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과 상관없이 이기적으로 살아갔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바로 이 때 한 노인이 저녁이 되어 밭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16절을 보니 이 노인은 본래 기브아 사람이 아니고 에브라임 산지 출신으로 기브아에 거류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레위인의 목적지가 에브라임 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고향 출신인 셈이죠.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노인은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는 레위인 무리를 발견하고는 그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기브아 주민 모두가 레위인에게 냉대를 베풀 때, 오직 이 노인 한 사람만큼은 레위인에게 환대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레위인은 이 노인이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고 19절 말씀을 보면, 자신이 끌고 온 나귀와 그의 첩과 하인이 먹을 모든 음식과 포도주가 다 있으니 숙소 곧 잠자리만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 레위인에게 더 큰 환대를 베풉니다. 20-21절 말씀을 봅시다. “(19:20)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19: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해가 질 때까지 밖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레위인을 만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노인도 사정이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일에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노인은 레위인의 일행이 하룻밤 머물며 사용하는 모든 것을 자신이 다 담당하겠다고 말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대는 안심하라!” 이 말은 히브리어로 “샬롬 라크”입니다. ‘이 노인을 놓치면 어떻 하나? 길거리에서 자야하나?’하고 불안해하며 긴장하고 있는 레위인의 마음을 안도하게 했습니다. 노인은 레위인이 쓸 것을 다 담당할 것이며 그를 관대하게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글성경에서는 읽기 어렵지만 히브리어로 보면 레위인 일행이 노인의 집에 들어가서 발을 씻고 마시는 사이 나귀들에게 먹이고 짐승을 돌보는 일을 한 것이 바로 이 노인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약속한대로 레위인 일행에게 환대를 베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로부터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나그네를 대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는 레위인을 무시하고 냉대했던 기브아 사람들처럼 지금도 이웃의 어려움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은 차갑고 사랑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대접하고 사랑하고 극진한 사랑을 베풀고 살아가야 합니다. 냉대의 시대 속에서도 사랑의 환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