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9 야망과 이기심으로 세운 왕국 (사사기 9장 1~6절)

 

기드온에게는 아내가 많았고, 그는 아들이 무려 칠십명이나 있었습니다. 세겜이란 지역에는 기드온의 첩이 있었는데 그도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의 이름이 아비멜렉입니다. 기드온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은 리더십의 부재에 빠지게 됩니다. 이 혼란한 틈바구니 속에서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첩의 아들이고, 게다가 어머니가 이방 여인입니다. 따라서 기드온의 다른 자식들 즉 자신의 이복형제들과 기드온의 가족들에게 차별을 당하거나 식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세겜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아비멜렉의 어머니가 세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외가를 찾아간 것입니다. 세겜은 여호수아가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모여 언약을 갱신한 장소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기근에서 살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요셉의 뼈가 묻어 있는 장소입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에게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지역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금으로 에봇을 고향 오브라에 둠으로써 민심은 세겜에서 오브라로 쏠려 있는 상황입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려는 탐욕을 이루기 위하여 오브라에 대해 열등감과 시기심에 빠진 세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했습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에게 혈연을 강조하며 오브라에 있는 기드온의 자녀들이 아니라 세겜의 골육인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아비멜렉은 왕위 경쟁자인 그의 이복 형제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는 잔인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야망과 탐욕에 눈이 멀면, 무서운 죄악도 서슴지 않고 행하게 됩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히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것이 죄인의 특징입니다.

아비멜렉의 유혹에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자신들의 혈육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면 그로 인해 특별 대우를 받거나 경제적인 특권을 누릴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고 한다는 소식은 세겜 전체에 퍼지게 되었고, 세겜 모든 이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압제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원한 영웅이자 구원자입니다. 세겜 사람들도 기드온에게 빚을 진 셈입니다. 그런 기드온의 자녀들을 죽이려고 하는 아비멜렉의 계획에 세겜도 동참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이기심과 탐심에 사로잡히면 악한 일에 이용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나중에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세겜 사람들은 바알브릿 신전에 바쳐진 은 칠십개를 아비멜렉에게 주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의 권력욕을 이루기 위해서 우상에게 바쳐진 금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했습니다. 오늘 1절 말씀을 보면, 기드온의 이름을 ‘여룹바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다’입니다.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 그 나무로 수소를 번제로 드려 하나님께 제사 드린 소행이 밝혀 졌을 때 동네 사람들이 기드온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때 기드온의 아버지 즉 아비멜렉의 할아버지인 요아스가 말하기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알이 참 신이면 그의 제단을 훼파한 기드온을 벌할 것이니 사람들이 직접 바알을 위해 나설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룹바알이라 이름한 기드온에게 아무런 저주나 재앙도 내리지 않고 그가 일평생 버젓이 살았다는 사실은 곧 바알이 가짜 신이요, 거짓된 우상에 불과하다는 증거입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로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아버지가 찍어내 버린 바알의 신전에서 나온 돈을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탐욕과 야망대로 그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신이라면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이라도 상관없다는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기록하기를 “탐심은 우상숭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바로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에게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하는 탐심을 품었고, 결국 그의 눈 먼 탐심은 아버지가 허물어 버린 우상에게 바쳐진 재물을 정치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비멜렉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그는 그 자신의 탐욕의 종입니다.

이기심과 욕심에 사로잡힌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이 준 은 칠십개를 사용하여 무법자로 살아가는 불량배들을 고용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기드온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이복 형제 칠십 명을 다 죽였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십시오. 사사기의 저자는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를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비록 이복 형제였다고 해도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아비멜렉은 왕이 되겠다는 야망과 탐심에 눈이 멀어 그의 형제 70명을 모조리 살육해 버렸습니다.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가족마저 버립니다.

부모의 유산을 더 많이 물려받기 위해서 법정에서 싸우는 자녀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다 서로 웃으며 사이 좋게 지내는 정다운 형제 자매였는데, 나이 들어 돈에 눈이 멀어 형제자매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형 아우 사이에 서로 욕설이 오가고, 그들 아내들도 머리채 잡고 싸웁니다. 주먹 다짐으로 때로는 피투성이가 되기도 합니다. 재물을 더 갖기 위한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가족이 남보다 못한 원수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기심은 분쟁을 낳고, 욕심은 살인과 폭력을 낳습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증가하는 가족 재산 분쟁 때문에 웃지못할 속담이 하나 생겼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러나 돈은 피보다 진하다” 너무 씁쓸한 속담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돈이면 가족도 버리는 사람들… 자신의 행복을 이룰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현대인들… 무엇이 문제입니까? 탐욕입니다. 돈 때문에 사람도 죽이고 가족도 배신하는 세상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탐욕의 종이 되어 살아가게 될 때 그 사람의 인생은 파괴에 이르게 됩니다. 탐욕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금 당장은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그의 성공 조차도 비극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비멜렉은 형제들 70명을 죽이고 그의 야망을 이루어 왕에 오르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큰 성공입니다. 왕이라니, 대단하죠? 그러나 아비멜렉의 삶은 그가 탐심의 종이 된 순간부터 불행과 저주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탐심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은 우상숭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데 어찌 그 끝이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과거에 끝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또 다른 아비멜렉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공, 재물, 돈, 명예,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탐심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우상숭배가 나무나 돌로 만든 것에 절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을 위해 살아가는 자나 욕심을 위해 악과 손잡는 사람 모두 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 끝이 좋기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아비멜렉을 죽이십시오. 탐욕을 위해 살아가려 하는 우리의 죄성과 싸우십시오. 어떻게 죄를 죽입니까? 말씀과 기도로 죽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로 악의 세력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을 싸워 이기며, 하나님 안에서 삶의 참 기쁨과 만족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