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2 미디안의 압제, 하나님의 책망 (사사기 6장 1~10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7년 동안 미디안의 압제를 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민족인 미디안의 손에 넘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다.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사사 드보라의 시대가 지난 이후 이스라엘은 또 다시 우상 숭배의 죄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민수기 3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광야 생활을 할 때 미디안 사람들과 싸운 기록이 나옵니다. 광야 시절 이스라엘은 타 민족과 전쟁을 치룰 만한 자원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에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니 이스라엘은 미디안을 격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광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자원과 풍족함을 누리며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미디안과 싸워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원수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침략 당하여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비참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6: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미디안의 압제를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에다가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고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석회석 지형이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굴들도 많았을 뿐 아니라 비교적 쉽게 굴을 팔 수 있습니다. 다윗도 사울 왕을 피해 아둘람 굴 속에서 지냈지요. 한국이나 미국은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들지만, 석회석 지형인 가나안 땅에서는 예수님의 경우처럼 굴을 파서 무덤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시신을 안치 하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웅덩이나 굴이란 곳이 사람이 살만한 쾌적한 곳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의 압제가 너무 심해지자 견디지 못하고 웅덩이와 굴로 피하였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압제 속에서 하나님께 피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방편으로 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빠진 자구책으로 어려움을 피하려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지 보여줍니다. 우리 삶에 어려움이 닥쳐올 때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피하십시오.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는 산성 되십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압제를 피해 산으로 피하였으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되지 못했습니다. 3-5절을 한 번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마다 미디안 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과 동쪽의 다른 사람들이 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심어 놓은 농작물을 망쳐 놓았습니다. 그들은 가사 땅에까지 그런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양이든, 소든, 나귀든, 하나도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와서 그 땅에 진을 쳤습니다. 그들은 천막과 가축을 가지고 왔는데, 마치 메뚜기 떼와 같았습니다. 사람과 낙타가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산으로 도망쳐도 먹을 것이 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양식이 없이 웅덩이 굴 속에 숨어 언제까지 버틸 수 없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그 땅에 들어와서 그 땅을 못 쓰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땅을 초토화시킨 것이죠. 미디안 족속의 약탈은 가혹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양식 뿐만 아니라 생계 수단인 가축들 양, 소, 나귀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가지고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풍요로움과 부요함을 약속하는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풍요가 아닌 빈곤이 찾아왔습니다. 부요함이 아닌 비참함과 피폐함이 그들의 삶을 덮었습니다. 사사기는 인생의 참된 풍요와 부요함이 우상에게서 절대로 나올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성경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간절히 찾는 풍요함과 부요함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압제 아래 살아간 지 어느 덧 7년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 산으로 피해서 사는 자구책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6절을 봅시다. “(6:6)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은 가난해졌습니다.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간 이스라엘에게 벌을 내리신 것이죠. 그 고통 속에서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잘못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부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C. S. Lewis는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확성기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고난 가운데 마음이 겸손해지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에 더 민감하게 귀 기울입니다. 곤궁에 빠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다시 찾았고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웅덩이에 빠진 것을 알고 어찌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딪치자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 삶에 찾아온 고난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신과 죄악을 제거하고 다시금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시기 위하여 사용하고 계신 시간은 아닌지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미디안 족속에게 압제를 당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임을 밝히 말씀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10절 말씀을 봅시다. “(6: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애굽 사람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그 땅에서 살도록 넘치는 복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버리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그들의 풍요와 부요함을 책임질 것이라 생각하며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들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문제를 고치기 전, 먼저 말씀으로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단호한 책망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쓴 약을 먹는 것처럼 거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고통 당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인 그들의 죄악을 해결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는 불순종이야말로 모든 불행과 고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고난 가운데 무엇을 피난처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만 피난처 삼으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만 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쓴 책망의 말씀도 겸허히 받아들이며, 의심과 불신을 버리고 우리 마음에 믿음을 바로 세우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