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2 쫓아내지 못하는 이유 (사사기 1장 22~36절)

사사기 1장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땅 정복에 실패한 모습을 차례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제 본문인 사사기 1장 19절에서는 유다 지파가 철병거를 가진 골짜기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고, 21절에서는 베냐민 지파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에 이어서 요셉 지파와 다른 지파들이 가나안 땅 정복을 실패하는 내용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 지파는 12지파 중 유다 지파 다음으로 많은 군사력 가진 지파였습니다. 22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 가문은 ‘벧엘’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경제적으로 부요한 땅만 점령했을 뿐 다른 땅을 점령하는 데는 매우 태만했습니다. 요셉 족속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기록이 27절, 28절, 29절에 무려 3번이나 연속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요셉 족속이 가나안 족속을 하나도 살려 두지 말고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음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8절 말씀을 보면, 심지어 이스라엘은 가나안 보다도 강성하게 된 이후에도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편안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노역을 시켰습니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가나안 족속을 죽이지 않고 노예로 삼은 것은 그들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불순종과 타협의 모습은 요셉 지파 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들의 모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30절 이하를 자세히 살펴보면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라는 표현이 무려 4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30절을 봅시다. “(1:30)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 스불론 지파의 경우에도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 중에 거주하게 되었고, 그들을 섬기는 노예들이 되었습니다. 이 패턴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을 멸절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안위와 평안함을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족속이 그들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을 노예로 삼아 그들 대신 나무를 자르고, 물을 퍼 나르고 고된 농사 일을 시키는 등 가나안 족속을 살려 두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가나안 족속을 살려 두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는 올무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의 우상들을 섬기게 되었고, 그 결과 엄청난 영적 타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훗날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죄를 타협하고 우리 삶에 남겨두면 반드시 치명적인 고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하고 있는 저수지의 둑이 터졌습니다. 제방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사고로 저수지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해 보니 저수지 아래 생긴 작은 구멍이 화근이었습니다. 댐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지 않습니다. 강한 수압에 오랜 시간 동안 댐이 버티다 보면 깎이고 깎이다 보니 조그마한 구멍이 생깁니다. 그 구멍을 막지 못하면 댐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옛말에 “개미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린다”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짓고 있는 조그마한 죄를 얕봐서는 안 됩니다. 죄는 우리 몸의 암세포와 같아서 가만 놔두면, 우리 영혼의 치명적인 피해를 가지고 옵니다. 암세포가 소리 소문 없이 서서히 우리 몸 속에서 진행되는 것처럼, 죄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우리 영혼을 파괴해 갑니다. 그리고 결국에 죄는 인간의 영혼을 죽입니다. 우리 몸에 암세포가 있다면 크기와 상관없이 제거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영혼의 죄 역시 그 크기에 상관없이 제거해야 합니다.

사람이 길을 가다 넘어지는 모습을 유심히 보십시오. 이 세상에 큰 바위나 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나뭇가지, 툭 튀어나온 작은 돌 같이 방심하고 지나갈 만한 것들에 사람은 걸려 넘어집니다. 물론 죄의 경우 너무나도 명명백백한 큰 죄들로 인해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살인, 강간, 도둑질 같은 죄들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는 그런 죄들보다 방심하고 지나칠 만한 작은 죄들로 인해 더 많이 넘어집니다. 중국 고전 글귀 중에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미 언덕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외적의 침입이나 엄청난 자연 재해 때문에 망하는 경우보다, 오히려 그 나라 안에 있는 조그마한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서 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인을 하겠습니까, 도적질을 하겠습니까? 겉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죄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길 높은 둑도 개미구멍이 커져서 무너지는 것처럼, 큰 산 같은 죄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미언덕 같은 작은 죄에 걸려 넘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개미구멍, 개미언덕 같은 죄들이 우리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죄를 타협하면 반드시 그 죄가 나중에 올무로 우리 삶에 큰 고통으로 나타납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 떠나가게 만듭니다. 따라서 죄는 어떠한 모습도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죄는 끊어내야 하며 우리 삶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암세포입니다. 성령의 불로 죄를 태우십시오. 성령께서 죄를 끊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우리 삶에서 끊어내고 쫓아내야 할 죄들을 철저하게 제거함으로써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