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싱글 하우스를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집 안쪽에는 사람들이 주로 생활하는 방이 있고, 방 밖에는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는 부엌과 거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 건물 밖에는 잔디가 있는 앞뜰 혹은 뒤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이와 같은 ‘삼중 구조’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하나님께 매일 분향을 드리는 ‘성소’가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성막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 바깥쪽에는 ‘뜰’이 있습니다. 마치 오늘날에도 집 주변에 울타리를 세워서 뜰의 경계를 나타내듯이, 성막 뜰도 울타리를 세워 뜰의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 지었습니다. 성막 뜰 울타리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함부로 넘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두었습니다. 성막 뜰의 입구는 해가 뜨는 동쪽입니다. 성막 뜰의 입구는 커튼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시겠습니까? “뜰의 휘장 문”이란 단어가 나오죠? 이것이 바로 성막 뜰의 입구가 되는 커튼을 의미합니다. 이 커튼은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과 마찬가지로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짰습니다.
성막 뜰 입구에 있는 휘장을 통과하여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은 하나님께 제물을 잡아 불태어 드림으로써 제사를 드리는데 사용된 기구입니다. 1절 보니까 번제단의 길이와 너비가 다섯 규빗입니다. 가로 세로가 각각 다섯 규빗인 정사각형 모양인 것이죠. 한 규빗은 성인 남성의 팔꿈치에서 중지까지의 길이입니다. 평균 45cm 정도로 잡습니다. 따라서 5규빗은 약 2미터 25센치 정도 됩니다. 단의 높이는 3규빗, 약 1미터 35센치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당시 이방민족이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사용하는 제단들은 이보다 한참 크고 웅장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면, 200백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는 제단 치고는 매우 작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제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달성하셨습니다. 2미터 조금 넘는 그 작고 평범해 보이는 제단을 통하여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셨고,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열왕기하 16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의 아들 아하스 왕이 등장합니다. 그가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그들이 우상을 섬기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제단의 구조를 보게 됩니다. 아하스 왕은 앗수르 사람들이 섬기는 제단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놋 제단을 성막 뜰 구석으로 치워 두고, 앗수르 사람들이 그들의 이방신을 섬기기 위해 지은 제단의 양식을 따라 새로운 제단을 성막 뜰 중앙에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다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큰 범죄행위였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합니다. 교회 건물은 얼마나 큰가? 본당에는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는가? 주일예배에는 몇 명이나 모이는가? 그러나 꼭 교회가 커야지만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수백명 수천명이 모여야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보십시오. 얼마나 초라합니까? 얼마나 볼품없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방 우상을 섬기는 양식을 따라 제단을 지은 아하스 왕처럼, 자신의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 말고 또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3미터도 안 되는 작고 초라한 놋 제단으로도 200백만명이 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저 볼품없는 작고 초라한 십자가를 통하여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2절 말씀을 봅시다. “(38:2) 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단과 연하게 하고 단을 놋으로 쌌으며” 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은 아카시아나무를 말합니다. 조각목은 단단하고 튼튼한 나무로 성막 기구를 만들기에 적합했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조각목으로 만든 이 단을 놋으로 쌌습니다. 성소에서 사용하는 기구들은 다 금으로 입혔습니다. 그런데 왜 제단은 놋으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놋의 융해점이 1,083도로 고열에도 견딜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물을 뜨거운 볼로 태워야 했던 제단의 쓰임새로 미루어 볼 때 금과 은보다는 융해점이 높은 놋이 더 적합합니다.
2절을 보면 제단에 연결된 뿔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제단 모퉁이 네 곳에 뿔을 만들어 달았습니다. 이 역시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참고로 성소에 있는 분향단에도 네 모퉁이에 뿔이 있는데 그것은 정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시편 118편 27절을 보면 제단뿔은 희생 제물로 사용될 짐승이 도살되기 전 잠간 동안 매여 있도록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제물을 제사드릴 제물을 잡아 죽인 후 그 피를 제단뿔에 발랐습니다. 죄인이 이 뿔을 잡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떤 죄인이 도주하여 제단 뿔을 잡은 경우 그 죄인은 죽임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이 죽음을 피하기 위하셔 제단 뿔을 잡고 있었던 것을 성경은 기록합니다. 솔로몬 시대 반역을 도모했던 아도니아는 죽음을 면키 위하여 용서를 구하며 제단 뿔을 잡았고, 이런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솔로몬은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습니다. 제단 뿔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죄용서의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제사는 여러가지 목적을 위해서 드려졌습니다. 죄사함을 위한 제사,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는 제사,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제사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번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소, 염소, 양, 비둘기 같은 동물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곡식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곡물을 빻아 가루로 가지고 왔습니다. 기름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교회 올 때는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한 모형 즉 그림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주님은 모든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우리 죄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두 사하여 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죄를 회복하기 위해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소, 양, 염소 같은 동물들을 불태워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제사의 정신은 우리에게 이어집니다. 회개의 기도, 감사의 예배처럼 지금도 우리들은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번제단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성막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려야 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완전한 제사가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번제단과 마찬가지로 물두멍은 놋으로 제작했습니다. 8절을 봅시다. ”(38: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물두멍은 물을 담아 놓는 큰 대야입니다.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데 사용했던 기구입니다. 그래서 물두멍의 위치는 번제단과 성소의 입구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앞서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동물을 죽이고 그 내장을 꺼내는 일을 하며 제사장의 손에는 피와 여러 오물들이 튀거나 묻어 있지 않았겠습니까? 따라서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그의 손과 발을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물두멍입니다.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물두멍에 와서 더러워진 손과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키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손발을 씻는 문제는 대충 넘어갈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숨이 달린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우리 마음이 정결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비록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십자가 제사로 모든 죄가 사하여졌습니다만, 여전히 우리는 또 다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날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악들을 회개하며 우리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정결하게 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제사를 드린 제사장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들어가기 전 물두멍의 물로 자신을 씻음 같이, 구원받은 우리들도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살아가기 전에 반드시 먼저 우리 삶 가운데 남아 있는 죄들을 기도로 회개함으로써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옛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의 절차를 따라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긴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지켜야 할 영적인 일들이 분명하게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성막 뜰을 들어가서 가장 먼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림 같이, 매일 가장 먼저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또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성막에서 주를 섬기기 전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은 것같이, 오늘 하루 주님을 위해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 생각과 마음에 남아 있는 죄악들을 회개하며 정결하게 하십시오. 그리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결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