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던 장소인 성막은 이동식 성전이었습니다. 성막에는 창문도 없고, 우리가 어제 새벽에 살펴본 것처럼 네 겹으로 된 덮개로 만든 텐트였습니다. 성막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뉩니다. 전체 공간 중 2/3를 차지하는 큰방은 ‘성소’라고 불렀고, 나머지 1/3을 차지하는 작은방을 ‘지성소’라고 불렀습니다. 이 두 방 사이에는 휘장 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교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였고,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단 한 차례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성막에는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성막 밖에서부터 오는 모든 빛은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캄캄한 방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죠? 어두운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불빛이 필요했고, 등잔불만이 성막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성막을 밝히는 데 사용된 기름은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이었습니다. 여기서 ‘찧어낸’이란 표현에 주목해 봅시다. ‘찧어낸’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카티트’는 ‘깨트리다’란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람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할 때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첫째는 감람나무 열매를 절구처럼 움푹 파인 돌에 넣고 공이 같은 것으로 찧어서 기름을 추출하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큰 압착기 같은 것으로 감람나무 열매를 눌러서 기름을 추출하는 방법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찧어내고, 깨트림으로써 나온 순결한 감람유를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쓰기 위하여 주님께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구에서 압착기에서 완전히 깨트림 당한 감람열매처럼 하나님을 위한 우리들의 삶도 주님의 은혜로 완전히 깨트려져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왔던 지난 날의 죄악 된 모습들이 철저하게 깨트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회심’이라고도 말하고,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철저하게 회개하는 자기 깨어짐을 경험한 사람은 이제 자신의 삶이 거룩하신 주님을 위해 쓰임 받는 새로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순결한 기름’을 원하셨습니다. 불순물이 함께 섞인 기름은 하나님께 드릴 수 없었습니다. 불순물이 들어간 기름은 등잔불을 밝힐 때 불이 밝지 않을 뿐 아니라, 기름이 연소될 때 검은 그을음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불순물이 섞인 기름은 성막에서 쓸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 마음 속에 죄악이란 불순물이 남아 있는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트려진 순결한 기름’을 주님께로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깨트려졌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까? 육신의 정욕과 마음의 탐심을 위하여 살아가는 영혼은 죄악이라는 ‘검은 그을음’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깨어짐이 없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여전히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결한 기름’만이 주님의 등불을 밝히는 데 사용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귀한 일에 쓰임 받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악과 싸워 이긴 순결한 영혼만이 감당하게 됩니다. 등불을 밝히기 위해 사용된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결한 기름처럼, 하나님의 복음의 빛을 밝히기 위해 쓰임 받는 정결한 주님의 사람들 되길 축복합니다.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말씀을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은 성막에서 밤새도록 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7장 말씀만 보면, 성소에 있는 등잔대의 불이 24시간 계속해서 켜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끊이지 않고 등불을 켜라’는 말씀은 “밤낮 하루 종일 계속 등불이 켜 놓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매일 밤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등불을 켜 놓으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저녁 상번제를 드릴 때에 켜 놓은 등불이 밤새도록 어두운 성소를 밝히게 하고, 그 다음날 아침 상번제 때에는 등불을 소등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0장 7-8절 말씀을 봅시다. “(출 30:7)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 (출 30:8)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앞에 끊지 못할지며” 출애굽기 30장 7절에서 “등불을 정리할 때에”라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등불을 정리한다”는 말은 “밤새 타고 난 등잔불의 심지를 단정하게 잘라내고 다듬는 작업”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 상번제를 드리면서, 등불을 끄고 등잔불의 심지를 가지런하게 다듬는 일을 했습니다. 추가로 등잔불을 24시간 켜두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단서는 8절에 나오는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라는 표현입니다. 만일 불이 24시간 켜 있었다면 저녁에 성막에 들어간 제사장이 등불을 또 다시 켤 이유가 없습니다. 이처럼 출애굽기 30장 7-8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사장은 저녁에 등잔불을 켰고,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다가 아침에는 등잔불을 끄고 심지를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은 “한 번 켜 놓은 등잔불을 영원히 끄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저녁 상번제 때 밝힌 등불을 밤새도록 켜서 어두운 성소를 밝히고, 다음 날 아침 상번제 때에 등불을 소등하되, 그 규례를 영원토록 지속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 즉 제사장들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서 그 등잔불이 꺼지지 않도록 “간검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간검하다’는 말이 개역개정성경은 ‘보살피게 하라’로 변경되었습니다. 제사장에게는 등잔대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등잔대를 밤새도록 잘 살펴보아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자, 한 번 우리가 성막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성막 안에 바람이 불까요? 아니요. 성막은 사방이 막혀 있어서 바람이 불 일이 없습니다. 그럼 등잔불이 바람에 꺼질 염려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등잔불이 꺼질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기름이 떨어진 경우입니다. 등잔대의 불을 밤새도록 켜기 위해서는 깨트려진 감람나무 열매의 ‘순결한 기름’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순결한 기름’은 ‘성령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가 끊어지지 않도록 성령으로 충만하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기도 뿐입니다. 불순물과 같은 죄악을 싸워 이기는 방법도 오직 기도 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끊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밤새도록 컴컴한 성막을 밝히며 켜져 있는 등불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하나님은 깨어 주님의 백성을 지키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어두운 밤에도, 주님은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역사의 어둠 속에서도 밝히 빛나는 빛으로 주님의 백성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 3절입니다. “(삼상 3: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The lamp of God had not yet gone out…) 여기서 또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등불이 날이 밝으면 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의 저자는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사무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시간이 아직 해가 뜨기 직전, 동트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이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등잔대를 관리해야 하는 최고 책임자는 대제사장 엘리는 자기 처소에서 점을 자고 있었습니다. 죄악을 밥 먹듯이 짓고 살아가는 그의 망나니 두 아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 밤에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취도 안 보입니다. 모두가 등잔대 불을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성소에 누가 누워 있었습니까? 어린 소년 사무엘입니다. 왜 그가 집에서 안자고 성소에 누워 있었을까요? 성경학자들은 등잔대의 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서는 두 세 차례 기름을 채우고 불을 점검해야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소년 사무엘이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여기 성소에 누워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죄악이 만연하고, 시대가 영적으로 어두워도, 사무엘과 같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감람유와 드리는 거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왕이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가 왕이 되어 살아가던 사사기 시대입니다. 엘리가 대제사장으로 죄악으로 타락한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섬기던 영적 암흑기입니다. 바로 이 때 성경은 아주 희망적인 반전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등잔불은 그의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시대는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등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대가 어두워도 주님의 빛은 끊임없이 빛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순결한 기름과도 같이 준비하여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빛은 우리들의 거룩한 삶을 토하여 더욱 찬란하게 비추어, 어둔 세상을 주님의 빛으로 밝히며, 사탄의 세력과 싸워 승리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것입니다. 거룩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