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2 의인에게는 은총이, 악인에게는 정죄가 (잠언 12장 1-14절)


잠언 12장은 의인과 악인의 모습을 나란히 두고 대조합니다. 의인은 훈계를 좋아하지만 악인은 훈계를 싫어합니다. 여기서 훈계란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주의해서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자기 주장대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선택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의인은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영양분으로 열매 맺고 결실하는 풍성한 나무와 같지만, 악인은 소멸하는 겨와 같이 멸망합니다. 잠언 12장 전체 주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의인의 길에는 생명과 기쁨이 가득한 반면에 악인의 길에는 정죄, 심판, 재앙으로 인한 화가 있을 것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조를 통해 솔로몬은 지혜자의 교훈을 따라 생명과 기쁨이 있는 의인의 길을 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본문 1절에 나오는 ‘훈계’는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책망이 곧 훈계입니다. 옳은 길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에게 지금 가는 길이 잘못 되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훈계는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사람을 겸손케 합니다. 비록 훈계를 듣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만, 겸손하게 훈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큰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1절에 솔로몬은 이러한 징계를 싫어하는 자를 가리켜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징계를 받아들이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고, 반성하여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과거를 반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련한 짐승과 같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 부리는 악인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과 실수가 있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앞날을 위해서 과거의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징계를 순순히 받는 태도야 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숨기는 것은 거짓과 속임수입니다. 이와 같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2절을 보면 훈계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한 선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악을 꾀하는 자들, 하나님의 훈계를 받지 않고 하나님 없이 자기 고집대로, 자기 탐심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자들은 정죄함을 받습니다. 비록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모두가 하나님께 은총 받는 선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4절을 보면 솔로몬은 자기 지혜로운 여인과 어리석은 여인을 대조합니다. 두 여인 다 결혼하여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로운 여인은 ‘어진 여인’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질다’란 말은 덕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품이 성숙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여인들은 남편의 면류관이 됩니다. 성숙한 아내를 둔 남편들은 그 덕이 있는 아내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덕이 부족하여 남편에게 욕을 끼치는 어리석은 여인이 있습니다. 두 여인은 아내라는 동일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나, 남편에게 끼치는 영향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자기가 맡은 일을 다하며 내조하는 어진 아내는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덕이 부족하여 베풀지 아니하고, 이웃을 섬기지 아니하는 아내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냅니다. 성도는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행동하는 것에 따라서 성실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면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게으르고 부정직하게 살아감으로 예수님께 욕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5-6절은 의인과 악인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의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사람을 구원하게 합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영적인 구원 뿐만 아니라, 굶주린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상처를 싸매어 주는 일 등 실제적인 구원도 포함합니다. 의인의 삶은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주고 사람을 살리는 보람되고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인의 도모는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즉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대합니다. 악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늘 기계의 소모품처럼 여겨집니다. 그 결과 악인의 생각은 사람들로 다치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며, 결국 사람들의 삶을 파괴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국 그 사람이 지혜로운가 아니면 어리석은가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의인은 남을 돕고 살아감으로 타인을 살리는 삶을 삽니다. 그로 인해 존경과 칭찬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이 뿌리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 나무처럼 좋은 결실을 맺도록 복을 주십니다. 이처럼 지혜로운 자들은 칭찬을 받고 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나, 악을 행하는 자들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악인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간교함으로 물들어 있어 그는 불의의 이를 추구할 뿐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허물만 쌓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지나, 악인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 뿐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 길이 복된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의로운 길을 걸어가는 지혜로운 자가 될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