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중에 [표리부동]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과 속의 생각이 다른 경우입니다. 한 교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두 성도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두 사람 다 서로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공동체입니까? 본문 18절 말씀에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요”라고 했을 때 이 경우가 바로 표리부동한 사람입니다. 속으로는 상대방을 미워하면서도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면 겉과 속이 다른 것이죠. 이어서 18절에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참소하다’는 것은 타인을 비난하고 말로 헐뜯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솔로몬은 이웃을 비난하고 그에 대해서 좋지 않게 말하는 일들은 하는 사람은 미련한 자라고 했습니다. 속에서는 상대편 미워하지만 겉으로는 상대를 좋아하는 척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고, 속에서 미워한다고 겉으로도 그 미움을 표출하는 자 역시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감정대로 미움을 나타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겉으로 사람들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그 마음과 우리 내면이 일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상대방을 계속해서 미워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사랑 없음을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거짓 입술을 버리고, 마음을 말로 담아 표현하는 진실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19절부터 솔로몬은 말과 입술을 제어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말합니다. 먼저 19절을 보면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문자 그대로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이 상처 입을 말들, 무분별한 말들, 거짓된 말들, 천박한 말들을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자는 결국 그 자신이 얼마나 천박하고 초라한 사람인지 보여줄 뿐입니다. 반면에 불필요한 말들을 구분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관계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비난을 받지 않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신뢰와 인정을 받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의 혀는 ‘천은’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천은’이란 순수하게 제련된 불순물이 없는 ‘순은’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의인의 혀가 ‘천은’ 같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나 아픔을 줄 말들은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는 말들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치가 적다’란 말은 ‘쓰레기’, ‘오물’을 의미하여, 악인의 마음은 ‘쓰레기’ 같이 아무런 쓸모가 없고, ‘오물’과 같이 혐오스럽고 곁에 두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말은 마음의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 언어생활이 우리 마음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런 쓰레기와 오물 같은 악인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말 또한 무가치하고 혐오스러울 뿐이라고 솔로몬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21절에 솔로몬은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한다”고 했습니다. 의인의 언어 역시 그의 거룩한 마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살아가는 의인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교육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언어생활로 타인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와 격려를 나눠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주의 뜻으로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0: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세상이 발견하려는 복은 부와 재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부와 재물은 근심만 더 쌓이게 만듭니다.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 자는 부를 받으나 근심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축복 아니겠습니까? 악인은 하나님 없기 때문에 그의 부함과 함께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주와 함께 누리기 때문에 아무런 근심도 없게 됩니다.
23절을 보면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을 속이고, 상처를 주는 등 이웃에게 행악을 저지르는 것을, 또한 그로 발생하는 이익을 자기 삶의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악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삶 속에서 참된 기쁨을 얻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악인들은 심판하셔서, 그들이 평상시 두려워하던 그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들은 그 마음에 간절히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28절을 봅시다. “(잠 10:28)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꿈과 소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살아가면서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반대로 악인의 소망은 끊어집니다.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오지 않게 되고, 그들은 심판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29절을 보면 똑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믿는 자들에게는 말씀이 그들을보호하고 지키는 든든한 산성이 되지만, 행악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을 심판하는 말씀으로 임하게 될 것입니다. “(잠 10:29)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잠 10:30)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30절에서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한다는 것은, 의인의 삶은 만세 반석 되시는 하나님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그의 삶이 안전하고, 그의 영혼이 영영토록 보존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간 대가로서의 심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은 계속해서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번성하겠으나, 악인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멸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만세 반석 되시는 주님 위에서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