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8 다윗의 저주 (시편 109편 6절-20절)

저는 시편을 읽을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정말 이런 표현이 성경에 기록되어도 되는 걸까?’,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도 되는 걸까?’ 하고 생각이 들만큼 언뜻 보아서는 기독교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시편 109편도 사실 그 중 하나 입니다. ‘기독교’ 하면 사랑의 종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일 가만히 살펴보면 그 기도의 내용이 사랑의 기도라기 보다는 원수를 향한 저주에 가깝습니다. 아니 말 그대로 저주 입니다.
다윗은 현재 자신을 미워하여 그를 대적하고 거짓으로 그를 모함하고 헐뜯는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습니다. 다윗은 왕 입니다.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이 사람들 다 사형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오늘 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을 보며,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화가 났으며 분에 가득 차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6-12절까지는 다윗의 저주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모멸하는 저 대적들을 심판할 또 다른 악인을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부탁 합니다. 대적이 재판에 서게 되면, 죄인으로 영원히 남기를 바랬고, 그가 일찍 죽기를,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어 길거리를 유리하며 “좀 도와줍쇼”하고 구걸하고 살기를 구했습니다. 그가 벌어온 돈들은 다 타인이 탈취해 가길 빌었습니다. 다윗의 저주는 그 내용이 이처럼 무시무시 합니다. 다윗은 지금 분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분을 사람 위에 쏟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일하시며 신원해 주시기를 간구 했습니다. 계속해서 다윗의 저주를 보겠습니다.
13절 입니다. 다윗은 악인의 가문이 끊어지기를 구했습니다. 후대에 저들의 이름이 아예 역사 속에서 사라지도록 그의 후손이 끊어지게 해달라고 간구 했습니다. 심지어 저 대적의 부모가 지은 죄까지도 기억 하셔서 그에게 갚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저주 했던 그 저주가 그에게 고대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자, 이제 다윗이 이처럼 분에 가득하여 저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6절 입니다. “(시 109:16) 저가 긍휼히 여길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한 연고니이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 마음이 상한 자들… 이들은 모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원수는 이 사람들을 전혀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다윗의 대적들은 다른 사람들이 잘못되기를 바랬고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좋아했습니다. 다윗은 이런 악인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해 주시기를 간구 했습니다.
이처럼 시편 109편은 저주의 시편 중에서도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로 험한 저주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편 속에서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자신의 마음 깊숙한 감정을 고스란히 하나님께 가지고 간 다윗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으로 여겨지고, 심판을 받고 그의 기도마저 죄로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도 분명 많지만, 선을 악으로 갚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109편 8절을 보십시오. “ (시 109:8)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이 구절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인용한 구절 입니다. 누구를 떠올리면서 베드로가 인용 했을까요? 바로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를 떠올리며 그가 인용한 구절 입니다. 자신을 향해 선을 베풀어 준 스승 예수를 배신하고 대적들에게 넘긴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 세상에는 존재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이러한 악인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간구 하였습니다.
다윗은 분명 저들에게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수들은 거짓으로 다윗을 비방하고 아무 이유 없이 그를 공격 했습니다. 다윗은 사랑으로 선대 했지만, 이들은 선을 악으로 갚으며 사랑을 미움으로 갚았습니다. 이처럼 작심하고 자신을 헐뜯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보며,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신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실로 원수 갚는 권한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왔는지 그 신앙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 다윗이 그의 원수를 향하여 하나님께 호소한 저주의 내용은 너무하지 않았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철저한 징벌과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 내용이 잔인한지 교회사를 살펴보면 중세 시대에는 자신의 원수진 자를 저주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돈을 주고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이 시를 암송해 달라고 사례를 했다고 합니다. 다윗과 같이 저주시를 통해서 원수를 갚으려 했던 것이죠. 그런데 정말 이 시가 그런 주술적 행위를 위해서 쓰였을까요? 로마서 12장 17-21절 말씀을 보면,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에게 지는 것과 같습니다. 오직 선으로 악을 갚는 것만이 악의 세력을 이기는 비결 입니다. 그럼 악의 세력이 철저하게 응징되기를 하나님께 구한 다윗의 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다윗은 자기를 괴롭게 하는 자들을 직접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다윗은 이 대적들을 끝까지 사랑해주었고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괴롭힘이 끊이질 않자, 이제 하나님께서 이 일에 개입하사 해결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죠. 억울한 사연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죄인들이 돌이켜 회개하지 않을 때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을 향해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자를 향해 저주를 쏟아 놓은 다윗은 하나님의 신원하심과 구원하심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실 것을 간구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기보다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들도 그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격려하고 충고하기 전에 기도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억울함을 갚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