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6. 인생의 두 갈래 길 (시편 23편 1-6절)

한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기는 생후 6주만에 병원 측의 치명적인 실수로 시력을 완전히 잃어 버렸습니다. 장애인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그녀는 늘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고, 그녀의 베개는 눈물로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녀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빠… 그런 아빠도 그녀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가정의 상황과 형편은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취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시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기에 시에 들어갈 단어 하나하나에 운율을 맞춰보며 소녀는 그렇게 시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삶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맹인학교를 졸업한 후 자기와 같이 장애로 인해 외롭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9천편이 넘는 시를 썼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Fanny Jane Crosby” 입니다. 그녀가 쓴 시중에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불리는 찬송가가 된 시도 있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 Praising my Savior all the day along x2)
여기 또 한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인해 뇌를 다쳐 그만 뇌성마비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가벼운 증상이 아니라, 중증 뇌성마비 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심한 절망과 외로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유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이런 삶을 살만큼 특별하게 나쁜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평생 휠체어에 앉아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가는 중증 뇌성마비 살아가는 것은 불공평해 보였습니다. 기나긴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 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그녀의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불편한 몸입니다만, 알아보기 힘든 글씨일지 몰라도 그녀는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을 한 줄 한 줄 받아 적었습니다. 그 날 그녀가 적어 내려간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느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송명희 시인의 이야기 입니다.
오늘 이 새벽,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우리 성도님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혹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세상은 불공평하냐”고, 혹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며 “왜 내 인생은 이처럼 초라하고 작고 연약해야만 하냐”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가고 계시진 않습니까? (Fanny Jane Crosby가 발견한 것처럼, 송명희 시인이 깨달은 것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오늘 시편의 저자 다윗은 두 갈래의 인생길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길은 복된 길이요. 또 다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한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이며, 다른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악인의 길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중 그 누구도 멸망의 길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두 갈래의 길 중 ‘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오늘 이 본문을 쉬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따라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께 서지 않으며, 빈정대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깊이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돈이 많은 사람입니까? 큰 집에 사는 사람입니까? 건강한 사람입니까? 아니에요. 아네요. 돈 많고 불행한 사람도 많아요. 큰 집에 외롭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 건강하지만 허무하게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 도대체 어떤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까?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씀을 믿고 삶 속에서 순종하는 사람 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묵상하는 사람. 내 인생의 모든 상황 속에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 안에서 주의 뜻과 지혜를 삶 속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지금 내 앞에 있는 길이 죄의 길은 아닌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오만한 자의 자리는 아닌지,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분별하며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은 무엇입니까? 3절 말씀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물이 마르지 않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아 뿌리가 든든히 내려지는 것처럼, 의인은 말씀 속에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사니까 신앙생활이 깊이 자리 잡아 삶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의의 길을 걸어가는 자도 말씀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는 인정과 칭찬을 받고 삶에서는 형통한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인들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4-6절은 악인의 최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 1: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농부가 탈곡하는 모습을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탈곡하면 낱알은 튀어 올랐다가도 무게가 있어서 지면으로 떨어지지만, 껍데기는 겨는 가벼워 바람에 날아가 버립니다. 시인은 악인들의 삶이 바로 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겨’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져 벌릴 허망한 인생 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니께서 이들의 길을 인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을 이기고 부활 승리하는 소망이 없습니다. 악인의 길을 걸어간 사람의 결론은 멸망 입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입니다. 의인의 길은 겸손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에 복과 형통을 누립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교만과 탐욕을 좇기에 무가치하고 불안하며 결국 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두 갈래 길 중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까요?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악인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의인의 길을 걷는 것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 입니다. 날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복된 열매를 많이 맺는 형통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