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4 엇갈린 결론 (민수기 13장 21-3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가데스바네아”라는 장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기서 앞으로 나아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고, 뒤로 돌아가서 다시 애굽 땅에서 노예생활을 할 수도 있으며, 이곳에 정체한 채 계속 광야의 방황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한 선택의 기로였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라고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경계선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라고 하는 경계선에서 스스로를 후퇴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는 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성경은 이와 같은 실패담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0장 11절이 그 답을 줍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 하였느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동일한 실패, 동일한 불신앙을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기로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너희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전진하라. 가데스바네아의 경계선을 넘어가라!”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고 허락한 비전을 이루지 못하고 경계선 상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만 뒤로 돌아갔습니다. 이로 인해서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데스바네아까지 온 것은 아무런 목적 없이 온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 문맥인 민수기 13장 1-3절 말씀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좇아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내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 된 사람이라”(13:1-3).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저들에게 주시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열 두 정탐꾼을 보내신 것입니다. 모세가 보낸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명에 순종해서 보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에 땅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그 땅은 한 사람이 들고 가기에는 무거워 두 사람이 나무에 꿰어서 메고 가야하는 큰 포도를 생산할 만큼 기름지고 복된 땅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모세의 명령을 받은 열두 명의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탐지한 후에 돌아와서 모세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들이 보고한 내용이 민수기 13장 27절에 있습니다.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27절). 두 사람이 포도송이를 나무에 꿰어서 메고 왔습니다. 에스골 골짜기에서 메고 왔는데, “에스골”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포도송이’라는 뜻으로, 포도송이가 워낙 커서 그 동네 이름을 아예 ‘포도송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비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 하신 땅은 틀림없이 축복과 부요함이 있으며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이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음을 눈으로 보고 귀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탐꾼들의 보고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은데 있습니다. 민수기 13장 28절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28절). 28절이 무엇으로 시작합니까? ‘그러나’ 이게 문제에요… 하나님이 크신 축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어요. 그러나… 이 접속사는 불신앙의 접속사입니다. 우리 마음에 ‘그러나’ 접속사가 한 번 들어와 버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들을 다 뒤집어 엎어버리게 됩니다. 정탐꾼들이 말하는 요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분명히 크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장애도 거치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사람은 장애가 있어도, 방해요인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뚫고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지, 장애도 없고 방해도 없고 환란과 근심도 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아닙니다.

13장 3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31절).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될 일도 마음에 못한다고 하면 안됩니다. 반대로 안 될 일도 된다고 마음먹고 하면 또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도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입에서 “못 하리라. 안 되리라. 어려우리라”는 말이 쉽게 나왔습니다. 아직 싸워보지도 않았지만, 이미 태도에서부터 전쟁에서 패한 것 입니다.

정탐꾼들은 저 거인들에 비해 자신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는 자기 비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가나안 거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탐꾼들은 자기를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했을 뿐 아니라 있지도 않은 사실까지 사실인양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남의 생각을 자기가 아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과장이며, 자기 비하입니다. 한마디로 불신앙입니다. 신앙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보고서가 참으로 흥미로운 이유는 열두 명의 정탐꾼들이 똑같은 것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견해를 제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한쪽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이 서 있습니다. 30절에 갈렙이 먼저 보고 했습니다. “(민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갈렙은 믿음의 보고서를 제출 했습니다. “여러분 비록 저 땅에 사는 원주민들이 강하고, 그들의 성읍이 크고, 거인족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능히 저 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저 땅을 취하러 갑시다! 우리는 능히 승리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성과 강한 거주민들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보다 더 강하고 크신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바라 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지금 상황 파악 못한 것 아닙니다. 이 두 사람도 똑같이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자기들만의 힘으로는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쟁취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올라가자!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라고 주장했지만, 나머지 10명은 “우리가 그 백성을 취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고 주장 했습니다. 열두 명 모두 똑 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무엇이 이 두 그룹의 보고서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믿음 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눈에 보이는 상황을 뛰어넘어 일하고 역사하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을 보면 그 어떤 문제들도 작게 보이기 시작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백성 보다 강하시고, 온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견고한 성읍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서 싸우자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눈에는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눈 앞의 강한 거주민, 견고한 성벽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 정복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문제 해결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인생은 무엇을 바라 보는가가 중요합니다. 암담한 현실, 꼬여 버린 문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라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잠잠하게 만든다’는 뜻 입니다. 백성들이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겁을 먹고 불안해 할 때 갈렙은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승리를 선언함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 시켰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실망과 좌절로 인한 동요를 잠재웠습니다. 신앙이 담대한 사람은 이처럼 주변 사람들도 담대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은 어떻습니까? 33절 말씀에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봐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불안한 사람 곁에 있으면 우리도 불안해 지는 법 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아낙 자손과 거주민들에게 잡아 먹히고 죽음을 당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이들은 열등감에 싸이고 두려움에 젖어 버렸습니다. 싸워 보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나가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바라보고 신음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이 문제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건강도 없고… 이런 식으로 자기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결론 짓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고 담대함으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 그 강한 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도와주시고,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