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30. 솔로몬의 우상숭배 (열왕기상 11장 1-13절)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고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방에 둘러 쌓인 적들 보다 군사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 군사적 안정을 토대로 이스라엘은 무역이 활발해짐으로써 매해 엄청난 양의 자원들이 이스라엘 안으로 흘러 들어 왔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금이 얼마나 많았는지 솔로몬은 성 안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다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앉은 보좌도 금이었고, 그가 먹고 마시는 잔과 그릇도 다 금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심지어 솔로몬을 호위하고 있는 군사들이 들고 있는 방패도 다 금이었습니다. 은은 얼마나 흔했는지 돌덩이처럼 여겨졌습니다. 사람은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은 잘 나갈수록 쉽게 교만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수록,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남보다 더 건강할수록 인간은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잘해서 그렇다’라고 착각하는 경향을 갖게 됩니다. 솔로몬도 그러했습니다. 그도 자신이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지금의 이스라엘의 번영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솔로몬은 한 가지 외교적 정책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방에 위치한 국가들 관계를 더욱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신이 적국의 공주들과 정략 결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미 애굽 바로의 딸과 정략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이방 여인들을 왕비로 맞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솔로몬 자신의 지혜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이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방 여인과 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솔로몬도 분명 그 누구보다 이방 여인과 통혼이 율법상 금지 되어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많은 이방 여인들과 정략결혼을 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바로 이 결정이 그의 인생을 되돌릴 수 없는 영적 타락으로 이끌어 가게 됩니다.

1절 말씀을 봅시다. [왕상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여인이라여기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 라는 말씀에서 사용된 ‘사랑하다’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본래 신명기에서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할 것을 명령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 이방 여인들을 더욱 더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이 우리를 영적 타락으로 이끌어 가게 되고, 그 우상이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게 하여 결국 고통과 아픔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난 날 솔로몬은 하나님께 엄청난 뜨거운 열정과 헌신을 가지고 성전 건축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이루었습니다. 솔로몬도 분명 한 때는 열정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솔로몬은 부요한 번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순종의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마음 속에 일어난 변화가 어느 한 순간 갑작스런 사건으로 일어난 것이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찾아온 교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한 그의 마음 가짐이 조금씩 그의 신앙을 깨트렸던 것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댐이라 할지라도 동전 만한 조그만 구멍을 놔두면, 처음에는 구멍 사이로 졸졸 흘러가던 물이 댐 전체를 무너트리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우리 삶에 방치하는 일은 결국 영적인 타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이 얼마나 많은 여인들과 정략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봅시다. 3절을 보니 후궁이 700명이고 첩이 300명이라고 합니다. 이중 후궁이라고 불리는 700명이 바로 이방 나라의 공주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남편 한 사람에 아내 700명이란 숫자는 매우 비정상적인 숫자 아닙니까? 솔로몬이 얼마나 탐욕에 눈이 멀어 벌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솔로몬도 이처럼 수백명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죄의 특징은 끝을 모르는 탐욕 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 제가요. 지금은 바빠서 성경 보고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돈 조금만 더 벌고요. 삶이 안정되고 여유가 있으면 그 때 교회 일도 봉사하고 선교사님들 돕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보십시오. 조금만 더 번다는 돈, 평생 벌어도 모자라지 않습니까? 우리 삶이 아무런 걱정 없이 안정된 날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 저 나중에 할께요!” 하는 사람 치고 나중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해도 우선순위를 세워서 그 가운데 일부를 먼저 하나님께 드릴 줄 아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지금은 정치적으로 정략 결혼해야 나라가 안정 되고 경제가 살아나니까, 제가 이방 공주 한 사람하고만 결혼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정략 결혼이 무려 700명이나 되었던 겁니다.

하나님 경고에도 불구하고, 두 귀를 닫아 버리고 더 나아가 세상과 타협하고, 나 자신을 속인 결과는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는 것입니다. 한 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성전 앞에 찾아와 열심으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던 솔로몬을 한 번 보십시오. 5절부터 8절을 보면 그가 여러 우상들을 섬기는 모습이 나옵니다.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곤,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 암몬 사람의 가증한 몰록 등 그는 셀 수 없는 우상들을 섬겼고, 또 그 우상들을 위해서 산당까지 다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 때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솔로몬이 이제는 우상 제작과 이방신전 건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의 최후가 이처럼 어리석습니다. 솔로몬은 정략 결혼이라는 정치적 제도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했으나,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을 분열과 멸망으로 이끄는 최악의 선택이 되어 버렸습니다.

9-10절을 한 번 봅시다. “[왕상11: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왕상11:10]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솔로몬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그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무려 두 번씩이나 나타나 그가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고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빼앗아 그의 신하에게 줄 것이라고 심판하셨습니다.

솔로몬 이야기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성경 어디에도 그가 하나님의 징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돌이켜 회개했다는 언급이 일절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타락과 그에 따른 징계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진다고 해서 지금 당장 심판하시지는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솔로몬에게 하셨던 것처럼 돌아와 회개할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주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나의 지혜를 더 낫게 여기는 교만함이 있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우상이 우리 삶과 마음에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돌이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지는 않았습니까? 지혜롭다고 여겨졌던 솔로몬의 안타까운 타락과 징계 받음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들은 죄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와 구원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