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23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열왕기상 8:33-43)

 

열왕기상 8장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완공한 이후,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막 안에 있던 언약궤를 성전의 지성소로 옮기고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이 성전 봉헌식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여한 전 국가적인 행사였습니다. 8장 12-21절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행한 봉헌사를 담고 있고, 22-53절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성전 봉헌 기도 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며 드린 봉헌 기도에서 가장 첫 번째로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은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구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복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범죄한 자들의 악함과 의로운 자들의 결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옳고 그름을 밝혀 주길 것을 기도했습니다.

자, 그리고 이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이 바로 성전 봉헌 기도의 4 번째 간구 내용입니다. 매일 성경 큐티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오늘 본문이 둘째 간구, 셋째 간구, 넷째 간구, 다섯째 간구 이렇게 되어 있을탠데요, 이는 제가 조금 전 설명 드린 첫 번째와 두 번째 간구 내용을 간구로 보지 구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고요.

오늘 본문을 크게 보면 33-40절까지가 다 비슷한 간구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말미암아 재앙 가운데 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죄를 용서해 주실 것, 그리고 그 재앙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가올 미래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지을 것을 예상하고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죄 없이 살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지금 이 순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서서 성전 봉헌 예배에 참여 중이고, 엄숙하게 기도하는 중이지만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또 다시 하나님께 범죄할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또한 악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즉 우리 중에 죄사함이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늘 솔로몬의 봉헌사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줍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 어떤 재앙들이 그들에게 임했을까요? 33절을 봅시다. [왕상8: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주의 종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던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사방의 모든 적들과의 전쟁과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게 되면, 반대로 그들이 적국 앞에서 패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군사의 많고 적음이나 군장의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전쟁의 승리가 주어진다는 믿음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33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언제야 자신들이 범죄함을 깨달았습니까?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면, 인생을 막대기로 치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그 고난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난공불락의 도시 여리고 성을 어떻게 무너뜨렸습니까? 칼이나 창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승리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는 대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누가봐도 아이 성 전투는 이스라엘이 수적 우위를 가지고 있기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쟁이었는데 패배했습니다. 여호수아를 필두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울며 자신들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나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하나님은 이 패배를 통해서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 바쳐야 했던 전리품을 숨긴 아간의 범죄를 고발하셨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이 훔친 모든 것을 불태우고, 아간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돌로 쳐 죽인 이후에야 비로서 아이 성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33절에 기도합니다. [왕상8: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왕상8: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솔로몬이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도 아간처럼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서 배역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니 아마도 그렇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러할지라도 우리가 죄에서 돌이켜 주께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성전에서 죄를 사해주시기를 위하여 간구한다면… 하나님 반드시 그 기도를 들으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이 당한 피해도 회복시켜 주십시오!”

이후 이러한 패턴이 두 번 더 반복됩니다. 35절 보십시오. [왕상8:35]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 솔로몬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주님의 심판과 벌로 인하여 비가 그치고 가뭄이 일어나게 될 수 있음을 언급합니다. 죄로 인해 가뭄이 찾아왔지만,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비를 내려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이어서 37절 봅시다. [왕상8:37] 만일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하나님은 자연재해를 통해서도 죄인들을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영적인 “wake-up call”을 하십니다. 죄로 인해 기근이나 전염병이 찾아왔지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이 모든 재앙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이들에게 내리시는 대표적인 세 가지 재앙이 있는데 바로 전쟁, 기근, 전염병 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요청한 이 기도대로 정말 이루어졌을까요?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재앙에 빠지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금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셨을까요? 네 맞습니다.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한 두 번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거듭하고 또 거듭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또 용서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야 말로 이스라엘에게 가장 필요한 사안이며, 그 중심에는 ‘회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에는 회개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분명한 인식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죄라도,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주님께 돌아 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 죄악을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 죄값인 재앙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확실한 사랑의 증거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였을 때 죄사함을 위해서 성전을 향해 기도했지만, 우리는 어디를 보고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또 부활하신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신앙의 최우선순위를 삼고, 늘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