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3.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로마서 4장 13-25절)

1952년 7월 4일, 30세의 플로렌스 체드윅이라는 미국 여자 수영선수가 카타리나 섬에서 캘리포니아까지 해협 횡단에 도전합니다. 그 거리가 자그마치 21마일, 약 33킬로미터나 됩니다. 빠른 배로 가도 대략 40분은 더 걸리는 거리입니다. 전국의 메스컴이 주목하는 가운데 드디어 그녀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잠도 자지 못하고 무려 열여섯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물속에서 쉬지 않고 헤엄 쳤습니다. 그녀는 모두의 예상과 편견을 깨고 긴 거리를 횡단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 짙은 안개가 플로리다 해안가를 덮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더 헤엄쳐야 하는지,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결국 그녀는 중간에 해협 횡단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안개가 걷히고 보니, 그녀가 포기한 바로 곳은 목적지에서 불과 500m 도 채 안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녀가 차가운 물에서 나오자, 기다리던 취재진과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목적지가 있는데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였습니까? 그러자 그녀가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포기를 하게 된 것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물이 차가워서도 아닙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마음이 무거워지고 이어서 몸도 점점 뻣뻣해져서 도저히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이처럼 우리의 마음과 육체까지도 연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본문에는 도저히 이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약속을 기다렸던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흔 다섯에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약속의 땅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 하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놀라운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12:2)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 것이다!” 아직 자녀가 없는 칠십 대 중반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처럼 다소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에 아브라함은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내심 소망을 갖고 임신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아들을 주시려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을 잊으신 것일까요?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지고 아니 10년이 지나 강산이 변화 했지만, 여전히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임신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그 분의 약속을 잊으신 것일까요?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어느새 24 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 버렸습니다.

사람이요, 이처럼 10년 20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낙심하기 마련입니다. 이제 그의 나이가 무려 아흔 아홉 살입니다. 일흔 다섯에도 아이 갖는 다는 게 어려운 일인데… 아홉 살이 되어 버렸으니 확실히 소망이 끊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아내 사라도 여든 아홉의 늙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둘 중 한쪽이라도 젊으면 한 가닥 소망이라도 있을텐데 이런 노년의 부부가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상직적으로도 도무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그의 몸이 죽은 것과 같음을 알았으며, 그의 아내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아브라함 스스로 보아도 자녀를 낳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것입니다. 이미 자기 몸도 죽었고 아내 사라의 태도 죽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도무지 이뤄질 수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는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상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들 투성입니다. 나이도 너무 많고, 아내의 경수도 끊어졌습니다. 게다가 지난 24년 동안 임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고 계산해봐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가망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상황을 바라보면 이처럼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비록 나는 나이가 많지만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십니다. 비록 지금은 자녀가 없지만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부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에게 비전을 가져다 줍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가지면 소망의 증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떠한 소망의 증거들을 바라보았을까요? 본문 20-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하고도 이따금씩 그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시면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반드시 이뤄질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켜 약속이라 하지 않고 ‘언약’이라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반드시 지키실 약속, 즉 그분으로부터 ‘언약’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반드시 이뤄질 그 분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옛 언약을 가리켜 ‘구약’이라 하고 새 언약을 가리켜 ‘신약’이라 합니다. 오늘 우리 눈 앞에 있는 이 성경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에 기록하신 대로 반드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그는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아흔 아홉 살이 되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약속이 이뤄질 것이란 소망을 잃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굳건하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약속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야기 하나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갑상선 기능 항진에 의한 각피 석회화증’이란 긴 이름의 희귀병에 걸린 청년이 있었습니다. 칼슘이 몸 안에서 과다 생성되어 축적됨으로 온몸이 석회처럼 굳어 버리는 병 입니다. 여덟 살에 다리를 절기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리에서 누어버려 22년에 걸쳐 죽어가는 육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그는 자신의 마음에 찾아오는 절망을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도구가 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워있는 채로 독학으로 영어와 한문을 배우고 한 손에는 볼펜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한 권의 베스트 셀러를 탄생시킵니다. 30개월 여 만에 원고 800장의 고통의 이야기를 탈고합니다. 그가 쓴 책제목이 무엇이었을까요? 뜻밖에도 그것은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였습니다. SBS 휴먼 드라마에도 소개된 ‘박진식’씨의 인생은 말 그대로 감동의 휴먼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 그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믿음의 드라마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지독한 고통과 대결하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합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변화시켜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 분은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아무리 기도가 더디 응답 되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 삶에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 할 수 있습니다. 낙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새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하루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시고 반드시 이뤄질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