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30 자랑이 아닌 순종을 위한 율법 (로마서 2:17-29)

유대인들은 타민족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이다!”라는 선민사상으로 인해 교만과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탁월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변 국가 중 가장 연약하고 나약한 민족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전 세계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유대인을 선택 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에 대해서는 자자손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민사상으로 인해 다른 민족과 선을 그으며 특권의식, 차별의식을 느끼며 “우리는 우월하고, 너희는 하등하다.” “우리는 선하고, 너희는 악하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사도 바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의 우월주의, 교만함을 버릴 것을 당부합니다. 17-20절 말씀에는 유대인의 자기 인식이 나와 있습니다.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롬 2:17)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롬 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롬 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롬 2:20)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들은 율법 가진 것과 그들의 하나님을 자랑스럽게 생각 했습니다. 자기들 스스로를 영적으로 눈먼 사람을 인도하는 안내자요, 어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라 생각 했습니다. 또한 자기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기에 어리석은 이방인들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가진 건강한 자부심을 비난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그 율법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고 있는 이들의 이중성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죠. 사도 바울이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21-23절 입니다. “(롬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롬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롬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는 지나친 자부심과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율법대로 살아가지 않는 유대인들을 비난 했습니다. “당신들은 율법대로 살라고 남을 가르치면서 왜 자기 자신에게는 율법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그대가 왜 도둑질합니까?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그대가 왜 간음합니까? 우상이라면 질색하는 그대가 왜 신전 물건을 훔칩니까? 율법을 자랑하는 그대가 왜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바울은 율법을 자랑하고 가르치면서 율법은 전혀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의 이중성은 심각한 죄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이중성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욕을 먹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3-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롬 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 당시 1세기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욕을 먹은 이유는 그들이 율법은 가르치면서도 율법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많은 욕을 먹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은 가르치지만 그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회사 돈 도둑질하고, 성범죄를 일으키고, 교회 내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기 보다는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가로 젓고 있는 것이죠.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어째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맨날 다투고 싸우기만 합니까?”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가 배우는 내용과 삶이 일치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는 자를 의롭다고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를 의롭게 여기십니다. 아무리 10년, 20년 다녀도 말씀을 듣는 수준에서 멈추면 하나님 보실 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이 덧 없고, 허무한 신앙생활일 뿐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실천하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사람 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롬 2:25)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할례란 사내아이가 태어난 지 8일이 되면 그의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내어 그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예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임을 자랑하며 우월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으나, 정작 삶으로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 없이 자기 마음대로 죄를 짓고, 신앙의 양심과 도덕에 위반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할례는 무익하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율법을 행한 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 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다!”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의 백성이란 것을 나타내는 할례가 가치가 있겠습니다만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어기고 살아가는 자에게 할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이어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으로 전해질 수 있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26절 말씀 입니다. “(롬 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바울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록 너희처럼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람도 아니요,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은 사람도 아니지만,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런 사람이 오히려 참 유대인이지 아니하겠는가?”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강한 논리로 우월주의에 빠진 유대인들을 책망 합니다. 27절 말씀에 “할례 받지 않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다면, 그들이 율법을 소유했으나 율법대로 살아가지 않는 그대들을 심판하지 않겠습니까?” 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처럼 율법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유대인은 오히려 이방인처럼 여겨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방인이 오히려 참 유대인이 된다는 논리는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특권이 사라질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동지 여러분, 여러분이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다 참 유대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다 참 할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참 유대 사람이 아니고 몸에 받은 할례가 참 할례가 아닙니다.”

바울은 단호한 목소리로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너희가 할례를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지만, 율법을 향하지 않으면 무 할례자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방인이라도 율법을 행하면 할례자와 같다!” 바울은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으냐? 유대인으로 태어났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외적인 기준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종교적 형식주의, 외식주의, 선민사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싶은 결론은 29절 입니다.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오히려 속사람이 유대 사람이라야 참 유대 사람이며 문자화된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은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그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할례’라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은 백성 답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에서 내가 목사다, 장로다, 안수집사다, 권사다, 모태 신앙이다 하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우리에게 어떤 의로움을 더해 주지도 못합니다.

신앙생활 하며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 바로 ‘진실성’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속은 곪아 터져 썩어가고 있는데, 겉 모습은 번지르르 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 가장 안타까운 사람 입니다. 이런 분은 몇 십년 동안 교회를 다녀도 신앙의 초기 단계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들과 진정한 의미의 교제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풀려진 우리의 신앙의 가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세워져 가는 참 된 신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