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4. 나를 따라오려거든 (마태복음 16장 21-28절)

어제 새벽, 우리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중간고사를 치른 열 두 제자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 앞에 놓인 시험지에는 두 개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신 첫째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였습니다. 제자들은 막힘 없이 이 질문에 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두 번째 질문은 내셨습니다.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였습니다.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은 아무나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중간고사를 잘 패스했습니다. 시험에 통과 했으니 그들은 이제 더 한 차원 깊은 가르침을 배울 때가 온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국민학교 산수 시간에 덧셈과 뺄셈을 통과해야만 곱셈과 나눗셈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더하기 빼기라는 기초적 개념을 이해한 학생만이 그 다음 단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신앙의 기초적인 개념을 이해하자 예수님께서는 심화 과정을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여기 “이 때로부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은 때로부터, 기초적 개념을 파악한 때로부터 제자들에게 심화과정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열두 제자들에게 꺼내신 마음 속 이야기,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셔야 하는 ‘수난’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자기 생업도 다 버리고 수년간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데 그런 선생님께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게 된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이후에 부활하실 것도 제자들에게 함께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제자들이 원하는 그들의 구원자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따로 옆으로 가서는 거칠게 항의하였습니다. 22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라는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간하여’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이 다른 번역 본을 보면 “꾸짖으며”라고 번역 되어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꾸짖듯이 예수님을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지금 화를 내며 예수님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저 유명한 [삼국지]를 읽을 때 사람들이 책을 세 번 던진다고 합니다. 한 번은 관우가 죽을 때 두 번째는 유비가 죽을 때 마지막 세 번째는 제갈공명이 죽을 때 입니다. 왜 책을 던집니까? 책의 내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으면 좋겠는데, 유비 관우 장비가 멋지게 천하통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조조가 자꾸만 이긴단 말이에요.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애착을 갖고 좋아하던 관우도 죽고 유비도 죽고 결국 제갈량도 죽는단 말입니다. 그러니 독자들이 화가 나서 책을 던지는 거죠. 어찌 보면 지금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이와 유사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거칠게 소리 높여 말합니다. “주여!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입니다. 그는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가정도 다 뒤로 한 채 예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오늘 자기를 나무라는 베드로를 향해 이번에는 반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음과 같이 꾸짖으십니다. 23절 말씀입니다.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보고 뭐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까?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조금 전만 해도 베드로는 16장 16절 고백으로 예수님께 ‘베드로’ ‘반석’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큰 칭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생각을 예수님께 강요하자, 예수님께서 그를 사단으로 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아무리 좋아 보이는 방법이나 해결책도요,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오히려 그 길은 악한 길이 됩니다. 우리 눈에는 좋은 길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막다른 길이고 낭떠러지길 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황금으로 된 왕관을 쓰고 고급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왕노릇 하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죄인의 신분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가장 중요한 제자도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24-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우리 생각에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편안한 길 좋은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길을 꽃 길이 아니라 십자가 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살고자 하면 오히려 잃고 예수님처럼 잃고자 하면 오히려 살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사람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라를 세우려면 한 명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고, 그들로 군대를 결성해 주위의 사람들, 공동체, 나라들로부터 항복을 받거나 전쟁을 통해 굴복시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21절). 이에 베드로는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당시 왕정 국가에서 왕의 죽음은 곧 나라의 멸망을 의미하기에 베드로의 반응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의 일, 곧 세상 나라를 세우는 것과 같은 사고의 틀로 천국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는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천국은 칼이 아닌 십자가로,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세워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태도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오늘 이 하루 우리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