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31 예수님의 죽음에 연관된 사람들 (마태복음 26:1 – 26:16)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 나아와 귀한 향유를 부은 한 여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이 여인의 이름이 익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요한복음 12장을 통해 이 여인이 나사로와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주님의 머리에 부은 귀한 향유는 영어 성경을 보면 Expensive Perfume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값비싼 향수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향유는 곧 돈과 같이 취급될 정도로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왜 예수님께 이 값비싼 향유를 붓고 있는 것일까요? 향유를 붓는 행위는 장례를 위한 절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후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유가 사용되었습니다. 즉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 26장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의 죽음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간에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값비싼 향유를 붓는 장면이 끼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마태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한 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리아가 부은 향유가 얼마나 값비싼 것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역시 요한복음 12장을 살펴보면 이 여인이 부은 향유의 가치는 ‘300 데나리온’ 이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의 가치인가 환산해 보니 당시 유대인 노동자의 일 년치 품삯이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일 년치 연봉을 헌금하는 것.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마리아는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부을 수 없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붓고 있는 것입니다. 왜 마리아는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 값비싼 향유도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부을 수 있게 했을까요? 마태복음만을 살펴보면 이 이유를 밝히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12장 1절 말씀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즉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이 있기 엿새 전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를 무덤 가운데서 부르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늘 본문에서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가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죽어서 무덤에 갇혀있던 자기 오라버니를 살린 생명의 은인입니다. 또한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 이십니다. 즉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깊은 신앙이 그녀에게 있던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자이시자 생명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이 그녀에게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물며 그것이 일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였을지라도 마리아는 결코 아깝지 않았습니다. 아니 만약 그녀에게 더 값진 것이 있었다면 그것마저도 그녀는 주님을 위해 바쳤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는 순간, 우리는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분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이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께 드리지 못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도 내놓겠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지갑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리아와 같은 관점을 가졌다면, 마리아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으신 분인지 확실하게 알고 깨닫는다면 그 분께 드리는 그 무엇도 결코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리하여 향유 냄새가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이 향기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롭고 기쁨이 되는 향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마리아가 지금 예수님을 예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치를 높여드리는 것. 그 분의 참 가치를 깨닫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려 그 분을 섬기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오늘 마리아는 아름다운 헌신과 희생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 예배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날 마리아의 이런 예배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돈을 낭비했다고 분을 내며 비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 입니까?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제자들이 보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요한복음을 보면 특별히 이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께 제자훈련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즉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서 높은 직분을 갖고 있으며,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도 다 이수한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죠. 성경도 잘 압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관점은 마리아의 관점과 달랐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참 가치를 깨닫고 그 분을 예배했는데 비해, 가룟 유다는 여전히 세상의 가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일년 치 연봉을 저렇게 허비하나?” 9절 말씀에 보니 그의 논리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그러나 이 말도 사실 그가 가난한 자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요한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 오래하고, 교회 열심히 다녀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참 가치를 깨닫지 못하면 가룟 유다처럼 여전히 세속적인 크리스찬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긴 하는데 여전히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많아서 그분께 드리는 게 아까워서 다 드리지 못합니다. 오늘 이 본문 사건 이후 14절에 보니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깁니다. 그 때 그가 받은 돈이 은 30 세겔입니다. 은 30세겔은 노예 한 명 가격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며 그를 위해 가장 값진 것을 드렸는데, 가룟 유다는 우리 주님을 노예의 가격으로 팔아버린 것입니다. 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버렸을까요?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데서 온 기대와 예수님이 다르게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명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분을 따르면 곶감이라도 떨어지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왕궁이 아닌 골고다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자 가룟 유다는 심한 배심감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이 자기 기대와 꿈을 실현 해주실 분이 아님을 깨닫자 그분을 은 30 세겔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그 분의 참 가치를 깨닫지 못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분을 배신하게 됩니다. 세상을 선택하게 되어 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보고 가룟 유다는 분개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은 돈을 허비한 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좋은 일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치르는 희생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바치는 그 어떠한 섬김도 결코 헛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우리의 그런 헌신과 희생 그리고 우리의 섬김을 보시고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룟 유다의 관점이 아닌 마리아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이 하루 이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위에 있는 천국을 바라보시고 우리의 참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