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30 하지 아니한 것에 대한 심판 (마태복음 25:31-46)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직접 양과 염소를 분별하실 것이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우편으로 분류 된 양은 주님을 영접하고 따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좌편으로 분류 된 염소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두 부류를 구분한 기준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회적인 약자들, 즉 가난하고 연약하고 천대받고 멸시 받는 자들을 어떻게 대했는가?”가 바로 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34-36절 말씀을 보니 먼저 예수님께서는 오른편에 있는 자들을 보고 칭찬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된 나라를 물려받아라. 너희는 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 집으로 맞아들였고 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간호해 주었으며 갇혔을 때 찾아 주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편에 있는 이 사람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을 만난 기억도 없고 그분을 도와준 기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 언제 우리가 주님이 굶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예수님을 섬긴 기억이 없기에 이들은 이런 질문을 솔직하게 한 것이지요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 바로 4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놀라운 영적인 원리를 한 가지 발견하게 됩니다. 연약하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것이 곧 우리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원리 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를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뜨거운 정오의 태양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기 천막으로 불러 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내어줍니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와 같이 했습니다만,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부지 중에 천사를 영접한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작은 형제들을 돕고 섬기며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혹은 초대하여 환대를 베풀 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작은 형제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작은 자라고 멸시치 아니하고, 오히려 작은 자들을 불쌍하게 여겨 그들을 섬기며 살아온 사람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칭찬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의 왼편에 있는 사람들 즉 작은 자들을 무시하고 천대하고 돕지 아니한 사람들을 향하여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칭하시며 그들에게는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이 한 번도 자기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섬긴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왼편에 있던 자들이 억울하여 상소합니다. “아니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무시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본적도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4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우리 가운데 작은 형제를 무시하고 돕지 않는 것은 주님을 외면하고 섬기지 않은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형제를 섬기는 길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힘이 없고, 나약한 자들,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무시 받는 자들, 가난하고 몸이 아픈 자들을 섬기고 사랑할 때 우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람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문학가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중에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책이 한권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단편소설에서 <마틴 아부디치>라는 한 평범한 구두수선공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신실한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에 대하여 귀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틴은 비록 구두수선공이었지만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으며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간 그는 저녁을 먹은 뒤에 언제나 그렇듯이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마틴! 나는 너를 사랑하는 예수란다. 내일 내가 너의 가게를 들를 테니 너는 잊지 말고 나를 기다리거라> 마틴은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볼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다음 날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언제 찾아오실지 모르는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힘없고 형편이 어려운 할아버지, 추위에 떨고 있던 가난한 젊은 여인, 다 헤진 누더기를 걸친 꼬질꼬질한 거지만 그의 가게를 다녀갑니다. 마틴은 이 세 사람을 최선을 다해 섬기고 도와주었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있던 할아버지에게는 따뜻한 차를 주었으며, 가난한 젊은 여인을 위해 빵과 수프를 주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아기 우유 값을 하라고 돈도 조금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를 찾아온 거지에게는 그날 그가 번 모든 돈을 다 주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자, 그는 결국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다시금 어제와 같은 음성이 들립니다. <마틴아~ 마틴아~ 자신을 부르는 그 음성이 들려오면서 마틴의 방 안에는…..아침에 차를 대접했던 스데반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고…..잠시후에는 아침에 추위 속에서 찾아왔던 아기를 업은 여인과 적선을 베풀었던 거지도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또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작은 이웃 한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눈에 보이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작은 이웃 한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길이며, 작은 이웃 한 사람을 섬기고 돕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고 돕는 길임을 기억하시고… 우리 주변의 작고 힘 없는 연약한 자들의 필요를 사랑으로 섬기시는 성숙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