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8. 기름을 준비한 신부의 열 친구 (마태복음 25장 1-13절)

오늘날 결혼식 하면 대부분 하루 안에 끝이 납니다. 그러나 성경이 쓰이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결혼식은 보통 일주일이나 계속해서 진행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이유도 결혼식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5-6일정도 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낮에는 밭에 나가서 일을 한다거나 자기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결혼식은 대낮이 아니라 보통 저녁시간에 거행 되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긴 혼인잔치는 언제부터 시작될까요? 혼인예식을 하기 위해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행진을 하면서 축제는 시작 됩니다. 따라서 신부의 집에 있는 사람들은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가 와야 혼인예식이 거행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와서 신부랑 예식을 치뤄야만 잔치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결혼하는 신랑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또한 그의 행차가 예상 외로 늦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때로는 신랑이 늦게 오는 바람에 신부가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렇게 늦은 시간 오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처녀들이 신부는 아닙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부의 혼인예식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들러리입니다. 이들은 언제라도 신랑이 오면 즉시 그를 맞으러 나가는 역할을 맡은 자들입니다. 신랑이 밤에 올 경우를 대비하여, 그 처녀들은 미리 등을 준비하고 있다가 신랑이 오는 길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 처녀들도 모두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을 들고 있었습니다. 즉 겉으로 볼 때는 모두 신랑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등 안에 들어있는 보이지 않는 기름의 양은 달랐습니다. 열 처녀 중 오직 다섯 사람만 늦은 시간까지 계속해서 등을 밝힐 충분한 기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다섯 처녀는 소량의 기름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았습니다. 열 처녀들도 서로 누가 기름을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갖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면 다 예수님 잘 믿고 섬기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등을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활활 잘 타오르고 밝히 빛나는 등불처럼 열심히 신앙생활 했으나 기름이 떨어져 이내 신앙의 빛이 꺼져 버립니다. 그러나 신앙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오래오래 계속해서 이어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러한 분들은 20년 30년 40년이 지나는 동안 모진 풍파와 시련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등불 같은 신앙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겉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실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3절 말씀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기름을 가지지 않은 자들을 뭐라고 칭하십니까? ‘미련한 자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럼 4절 말씀을 보시겠어요? 기름을 준비한 자들은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슬기로운 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즉 신앙의 불이 꺼지지 않게 늘 성령의 기름으로 충만하게 지내는 자들이 곧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예정보다 신랑이 늦어집니다. 이에 밤이 깊어지고 어느 새 다섯 처녀가 준비한 기름이 다 할 때까지 신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기름이 다하여 등이 꺼진 후에 비로서 신랑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미리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처녀들은 그들이 가진 기름이 부족할지 몰라 주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도 집도 차도 원하면 다른 사람에게 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내 믿음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남편이 믿음이 있다고 아내가 함께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아내가 믿음이 있다고 남편이 저절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즉 신앙 생활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비록 등은 들고 있었으나… 늦은 밤까지 수고하며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기름이 없어서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결국 슬기 있는 다섯 처녀, 즉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한 이들만 신랑을 맞이하여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의 입장에서 보면 여태 이 늦은 시간까지 신랑을 기다렸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11절에 보니 그 다섯 처녀들이 와서 이렇게 구합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그러나 그들을 향한 신랑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신랑이 오기 전에는 이들에게 기름을 준비할 만한 충분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랑이 온 후에는 아무리 많은 기름을 준비한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 바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제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마음으로 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영적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스토리의 핵심 구절은 13절입니다. 함께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등을 들고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열 처녀들입니다. 여러분의 등에는 기름이 충분히 채워져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그 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계십니까? 아무도 우리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내 부모도 내 배우자도 내 형제 자매도 우리를 대신해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각자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또한 아직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기름을 준비할 수 있는 때, 다시 말하면 은혜의 때입니다. 즉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에라도 이 곳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하며 늘 영적으로 깨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