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16. 권위논쟁 (마태복음 21장 23-32절)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제물로 쓰일 동물을 판매하던 상인들과, 환전업자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내셨습니다. 이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예루살렘 전체에 퍼졌습니다. 사건을 보고받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몹시 당황해 하며 큰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상인들이 상거래를 하도록 허락한 것은 당대 유대교 최고의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전을 관리하는 책임자들인 자신들도 가만히 있는데, 예수님께서 성전에 오셔서 상인들과 환전업자들을 쫓아내신 것이죠.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들은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강력한 제동을 거신 거죠.

       만일 이러한 일을 예수님이 아니라, 일반 백성 가운데 하였다면 그를 당장 불러와서 심문한 후 형벌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을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 혹은 ‘메시아’라고 믿으며 그를 추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시에 입성하실 때 많은 군중이 앞뒤에서 그를 따르며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하며 그를 맞이 했습니다. 이처럼 이 당시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며 그의 모든 행적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면 성난 민심에 의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죠.

       이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아와 심문하는 대신에 그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져 그를 함정에 빠트리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것을 모의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형에 처한 구실을 찾아내기 위해 아주 의도적이고 치밀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여기서 말하는 이런 일이란,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어쫓은 사건을 의미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 교활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으로 이 일을 한다고 대답한다면 그를 ‘신성모독’죄로 처벌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만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권세라고 대답한다면 그 역시 ‘성전모독죄’로 처벌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이 질문은 어떠한 대답을 해도 예수님께서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악의적인 질문 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을 또 다른 질문으로 대답하셨습니다. “24-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1:24-25]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예수님의 질문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매우 당황 했습니다. 이미 세례 요한은 헤롯 왕에 의해 목이 잘려 순교를 당한 상태입니다. 왕가의 눈치를 살피던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의 사역이 하나님의 권세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만일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네, 요한이 광에서 세례를 베푼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하고 대답한다면 예수님께서 “그러면 왜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물어보실 것이 뻔합니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자존심상 그렇게 대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다고 이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네,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베푼 것은 사람의 권위로 말미암은 것 입니다.”하고 말하면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질타를 받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들은 애매모호한 답을 내기로 결정합니다. “우리는 그의 권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참 이상하죠?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고 인정하고 있었는데, 정작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거부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이들도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자신들에게 진실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싫어하여, 진실을 외면했던 것이죠. 세속적 욕망을 좇아서 성전을 장사치의 소굴로 타락시켰던 이들은 자신의 양심과 진실을 외면하는데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로서 가장 성전과 가깝게 살아가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살아간 것이죠.

예수님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례 요한의 사역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의 공생애와 십자가 죽음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하늘로부터 온 요한의 권위의 출처를 모른다고 하자,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신의 권위를 불신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시며 사역하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 쓰며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신앙생활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들도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행할 때 하나님보다 사람의 시선을 더 신경 쓴다면 본문의 종교지도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눈치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