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8. 나니 두려워말라 (마태복음 14장 22-36절)

보리떡 다섯 덩이와 작은 생선 두 마리로 2만 명을 먹이신 예수님, 이 사건을 본 무리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저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고, 다수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저분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은 재촉하시며 그들을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먼저 건너가게 하신 후,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그의 인기가 절정에 이른 바로 순간에 제자들을 멀리 보내시고 오히려 한적한 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기에 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오늘날 정치인이었다면 “네 맞습니다. 제가 보리떡과 생선으로 오천 명을 먹였습니다. 제가 기도해서 열두 광주리 남았습니다”하고 선전하기 바빴을 터인데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추종하는 모든 무리들을 다 뒤로하고, 아무도 없는 야산에서 홀로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아주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관심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아직 해가 떠 있을 때 예수님을 떠나 배를 탄 제자들, 어느 새 해가 지고 그들은 컴컴한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거센 풍랑을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물결은 점점 거세지고 뱃머리는 성난 파도를 간신히 가르고 있었습니다. 배는 이미 육지에서 수마일 떨어져 있어 돌아가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 보문 25절 말씀에 보니 이 따가 밤 사경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를 24시간을 8조각으로 나눴습니다. 낮 일경은 아침 6-9시, 낮 2경은 아침 9-12시, 낮 3경은 오후 12-3시, 낮 사경은 오후 3-6시 입니다. 따라서 오늘 25절에 나오는 밤 사경은 새벽 3시에서 6시입니다. 하루 중 가장 춥고 캄캄한 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들은 해가 떠 있는 상태에서 배를 출발하여 지금 새벽 3시를 넘길 때까지 바다 위에서 거친 풍랑을 맞아 힘들게 버티고 있던 것입니다. 새벽에 바다낚시 가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정말 춥습니다. 안 그래도 추운 곳이 바다인데 새벽 3시에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다를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배가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이들은 배고픔과 피곤함 그리고 불안함을 가득 품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제자들이 가장 춥고 힘들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지친 그 때에,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분이 계셨습니다. 26절 말씀을 한 번 읽겠습니다. (14: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아니, 그 누가 사람이 바다 위를 걸어 올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게다가 지금 가장 캄캄한 밤에 눈 앞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머리 긴 사람이 성난 파도 사이로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으니, 제자들은 하나 같이 예수님을 귀신으로 오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어찌나 겁이 났는지요. 다 큰 어른들이 “유령이다!”하고 소리를 다 질렀습니다.

그러자, 뜻 밖에도 그 분은 유령이 아니라,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나다. 무서워하지 말고 안심하여라.” 우리가 만약 그 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까요? 뭐 아무리 예수님이 무서워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하신다고 지금 사람이 그게 안심이 됩니까? 두려운 마음이 사라질 리 있겠습니까?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매우 의아해 하면서 아마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꿈인가 현실인가?’ 하며 두 눈은 휘둥그래졌을 것이며,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할 말을 잃었을 것입니다.

모든 제자가 어안이 벙벙하여 얼어붙어 있는 그 때에, 이 수제자 베드로가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주여, 정말로 주님이십니까? 만약 주님이 맞으시다면 제게로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왜 베드로는 이런 대답을 했을까요? 저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거 같아요. “주여, 정말로 주님이십니까? 만약 주님이 맞으시다면 빨리 배 안으로 들어와 주십시오.” 이게 더 정상적인 반응이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 맘 때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서서히 감을 잡고 있었습니다. 소경의 눈을 밝히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는 기적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루 전 날 오병이어로 2만 명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의 사건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모험을 시도 해볼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래, 예수님이라면, 주님이시라면, 물을 걸어오실 수 있으신 분이시지. 그런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신다면 나 역시 그 분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베드로는 믿음의 모험을 결단합니다. 지금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잘 못 물에 빠지면 곧장 배로부터 멀리 떠내려가 익사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다른 그 누구보다도 평생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살아온 베드로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믿음의 모험을 시도해보기로 결정합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이 베드로의 놀라운 모험에 우리 주님은 Come! “오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베드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이렇게 물 위를 걷는 거지. 너는 안되.”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 네 믿음대로 물 위를 걸어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믿음의 모험의 첫 걸음을 뗀 베드로… 그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다가갔습니다. 인류 역사상 예수님을 제외하고 물 위를 걸은 유일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베드로 입니다. 물론 조금 이따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물 위를 걷긴 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그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예수님을 보지 않고 주변을 바라보자 발생했습니다. 30절 말씀에 보니, 그가 예수님이 아니라 무엇을 바라보기 시작합니까? ‘바람을 보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 순간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성난 바람 부는 날 물에 빠지면 바로 죽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그의 마음에 공포심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물 위를 걷던 그가 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갖고 있을 때는 물 위를 걷던 자가, 거친 바람을 보고 마음에 의심이 생기자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확실하게 서 있으면 어느 곳에 있든 지 빠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차가운 현실을 바라보고, 마음에 의심이 찾아오고 나니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를 서 있게 하나 의심은 우리로 하여금 넘어지게 합니다.

31절에서 예수님은 의심하여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붙잡아 세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베드로와 함께 물위를 걸어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거친 바람이 금새 잠잠해 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베드로처럼 주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기고, 그로 말미암아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거친 바람을 바라보고, 사나운 파도를 바라볼 때는 의심이 생기고, 그로 인하여 물에 빠져가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에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로 하여금 넘어지지 않고 서 있게 합니다. 오늘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베드로처럼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거센 바람과도 같은 현실 때문에 의심하여 좌절한 것들은 없습니까?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의심에 바다 가운데서 베드로처럼 예수님께 손을 내밀고 구원해달라고 구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다시금 물 위를 걷는 놀라운 삶의 현장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