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중국에서 공산당 제 11차 중앙 위원회가 열리자 당시 중국의 공산당 총서기였던 덩샤오핑, 등소평이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앞으로 경제 발전과 현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이야 중국에도 수많은 IT 기업들이 있습니다만, 그 당시만 해도 아직 보수와 공산화가 강하게 자리잡은 중국에서 현대화란 단어와 중국의 연관성은 전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등소평의 연설이 있은 후 중국 경제는 매 8년마다 무려 갑절의 성장이란 쾌거를 이룩해왔습니다. 예들 들면 등소평이 연설하던 1978년에는 200개의 에어컨을 만들어내던 중국이 2005년에는 4천 8백만개를 생산해 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20개의 도시가 모두 중국에 있을 정도 입니다. 등소평이 경제 발전과 현대화를 추진하자는 연설을 할 때만해도 그의 주장에 코웃음 치며 비웃는 자들도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경제 성장 1위 세게 제1의 제조업, 세계 제 2의 소비국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군사 경비를 많이 지출하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중국이 움직이면 세계경제가 요동칠 정도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의 원동력을 이끌어 낸 등소평 그는 157 cm 의 작은 키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비록 이처럼 작은 체구에서 시작된 연설이었지만, 그의 야심찬 꿈은 세계에서 중국의 위상을 우뚝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처럼 세계를 변화시키는 움직임은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겨자씨와 누룩 역시 작은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천국이 그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천국의 속성을 함께 찾아봅시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천국 하면 우리가 어렸을 적 본 동화에서나 나올만한 금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크기의 성을 생각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거대한 성이 있다면 그 곳이 천국이 아닐까?” 하고 막연한 생각을 갖습니다. 이런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주신 천국에 대한 설명은 눈을 휘둥그래 할 만큼 새롭고 예상 밖의 대답이었습니다. “천국은 말이야… 사람이 자기 밭에 가져다가 심어 놓은 겨자씨와 같단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알 같이 작은 것, 아니 어쩌면 깨알보다 작은 것이 겨자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하늘나라, 천국이 겨자씨 같다고 하셨을까요? 천국과 겨자씨의 유사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겨자씨는 유대인 농부들이 땅에 뿌리는 씨 중에 가장 작은 크기의 씨였습니다. 우리나라 말을 보면 정말 작은 것, 조그마한 것을 가리킬 때 “손톱만큼”, “눈곱만큼”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요?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겨자씨만큼”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겨자씨가 얼마나 작고 가벼운지요. 그 크기가 1-2mm 밖에 안됩니다. 무게도 겨자씨 수백개가 모여야 1g 이 됩니다. 눈이 나쁜 사람은 겨자씨 한 알을 봐도 잘 안 보입니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씨앗이 땅에 심기어져 자라나기 시작하면, 그 크기가 무려 10-15 Feet, 약 3 미터에서 5미터가 넘는 크기로 자라납니다. 가지도 무성하고 나뭇잎도 풍성하게 자라납니다. 이렇게 자란 겨자나무에는 새들이 와서 그 자리에 둥지를 틉니다. 그 가지 그늘 밑에는 동물들도 와서 쉬었다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바로 이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베들레헴 시골 동네 마구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난 사내아기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 아기야말로 겨자씨 같이 작고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가 장성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습니다. 그는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작고 하찮은 겨자씨처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시작점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세계에 미칠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가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겨자씨처럼 사용하십니다. 새벽마다 주님께 올려드리는 기도가 우리 인생의 겨자씨가 되어,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드리는 이 예배가 이 세상에 겨자씨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적인 완성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천하의 모든 것에 영향력을 끼칠 정도로 커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겨자씨와 함께 한 쌍의 비유로 등장하는 것이 누룩의 비유 입니다. 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본문에 나오는 누룩은 빵을 구울 때 넣는 이스트를 의미합니다. 누룩은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기 위해 반죽에 반드시 필요한 재료입니다. 본문 33절 말씀을 보니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습니다. “가루 서말”이라는 것은 밀가루 한 포대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약 35 리터 분량의 밀가루 입니다. 사실 밀가루 35리터 자체는 얼마 안됩니다. 그러나 이 밀가루 안에 이스트가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놓고 밤새 기다리면 반죽이 엄청나게 부풀어 오릅니다. 35 리터의 밀가루 안에 2kg의 이스트가 들어가면 무려 230kg 의 빵이 나옵니다. 성인 남성 약 200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룩은 반죽에 들어가는 순간 보이지 반죽만 보이지 누룩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혀 어디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룩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룩은 반죽 안에서 반죽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천국이 마치 이 누룩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세상 안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도시 안에 심겨진 교회가 이 누룩과도 같습니다. 전혀 그 도시와 상관 없을 것 같지만, 하나의 교회로 인해 그 도시 전체가 변화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도 누룩과도 같습니다. 비록 작은 수 같지만, 한 사람의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그가 속한 가정, 직장 그리고 공동체들이 변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비록 지금 당장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작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큰 영향이 없어 보이고, 말씀 있는 시간이 하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예배 역시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낙심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를 위해 하는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겨자씨를 땅에 뿌리고, 누룩을 반죽에 넣는 것과도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작고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하찮게 보여도 이러한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여 전 세계를 뒤흔들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와 누룩과도 같이 작아 보일지라도, 앞으로 나타날 그 큰 영광을 사모하며 살아가시는 또한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심으시는 또 하나의 겨자씨와 누룩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