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3. 네 가지 마음 밭 (2) (마태복음 13장 18-30절)

1.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
 마태복음 13장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본래 논밭에는 농부가 키우는 식물이나, 곡식 외에도 엉겅퀴, 민들레 등 여러 잡초도 함께 자랍니다. 농경지에는 잡초 뿐만 아니라 가시떨기들도 참 잘 자랍니다. 문제는 곡식이 가져가야 할 영양분을 가시떨기가 빼앗아 가는데 있어요. 곡식이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양분을 먹고 자라서 번식력이 왕성해져야 하는데, 가시떨기가 곡식이 먹어야 하는 영양분을 다 가지고 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곡식이 잘 크지 못합니다. 게다가 가시떨기들은 햇빛을 막아서 곡식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도 말씀이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이런 가시떨기가 있음을 말씀해 주셨던 것이죠. 그럼 우리 속에 있는 가시떨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가시떨기가 무엇입니까? 총 2가지 입니다. 세상사는 염려, 물질에 대한 탐욕 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말씀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주님 말씀 순종하는 것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해요. 순종하는 것보다 어떻게 부자 되는가가 더 중요해요.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고 부자 만들어 주지 않으셔서 불만이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불신을 갖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 속 가시떨기들입니다.

마음에 가시떨기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에 세상 사는 일에 대한 염려가 가득합니다. 마음 속에 염려로 가득하다 보니까 하나님께 감사를 잘 못해요. 자기 삶에는 부족한 것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 할 제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염려가 마음을 덮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은혜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염려의 가시덤불이 하나님의 은혜를 못 보게 하는 거에요.
게다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불 같이 일어나서 온통 돈 버는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탐욕이 그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탐욕에 눈이 멀어 결국 패망의 길로 가는 거에요. 디모데전서 6장 10절 말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성경은 돈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는 근심하며 살 수 밖에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물론 살아가는데 물질이 없어서는 안되겠죠.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물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결코 돈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리거나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돼서는 안 됩니다. 유혹은 마귀의 강한 무기 입니다. 마귀는 물질을 가지고 성도들을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염려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살아가는 일에 대한 염려,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재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길가와 같이 단단한 마을 가진 사람이나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의 특징은 말씀의 뿌리가 깊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이 두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을 우리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혹은 피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번째는 조금 다릅니다. 이 사람들은 믿기는 믿는데,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있습니다. 우리 나라 옛 말에 중 마음이 “염불에 없고 잿밥에만 관심있다”고 하죠? 딱 그런 케이스인 거에요. 몸은 하나님 집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마음의 중심은 세상에서 돈 버는 일에 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재물을 쌓는 일이 더 중요한 거에요. 바로 세속적인 그리스도인 입니다.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뿌리는 내렸으나, 열매가 없습니다. 자라야 하는데, 자꾸만 자기의 시간과 에너지를 세상 사는 염려와 돈 버는 데만 투자하다 보니까 영적인 열매 맺는 일은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나 부자나 동일합니다. 돈 없는 사람은 “내일은 내가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하지?” 고민하느라 영적인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돈 있는 사람은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더 굴리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온전히 영적 성장에 결실치 못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이 사람이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말씀을 좋아합니다. 예배 자리 나오는 것 좋아합니다. 그러나 결국 세상의 염려, 재물에 대한 유혹과 욕심이 너무 커서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잡아 먹었습니다. 그래서 진지한 구도자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아무런 영적 열매와 성장을 얻지 못한 채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부자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사모함도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도 영적인 일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참 좋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어요. “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쫓을 수가 있겠느냐?” 이 말을 듣고 청년이 한참 동안 고민합니다. 아마 그는 그 시간이 영원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는 영혼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던 것이죠. 참 아쉽게도 그는 예수님 말씀을 버리고 떠나 갔습니다.

이 청년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고 재물이었던 것이죠. 겉으로는 하나님 잘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세속적인 그리스도인 즉 재물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부자 청년은 재물의 욕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더 컸습니다. 결국 그 탐욕의 가시떨기가 그의 신앙을 가로막아 버렸습니다. 여호와가 그의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이 그의 신이었습니다. 혹시 우리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세상 염려의 가시떨기, 재물의 유혹의 가시떨기가 많이 자라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가시떨기를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2. 좋은 땅(옥토)과 같은 마음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좋은 땅에 떨어지는 씨앗은 흙이 부드럽고 돌덩어리가 없어서 뿌리가 깊이 자리 잡습니다. 새싹이 자라는데 방해가 되는 잡초나 가시떨기가 없어 줄기가 곧게 자랍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 비유에 대해서 23절에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인 후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옥토 같은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좋은 땅과 같은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영적 옥토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처음은 말씀을 듣습니다. 그 다음은 말씀을 무엇 합니까? ‘지키다.’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말씀을 깨닫는다”는 말을 다른 복음서에 있는 병행구절에서 찾아보면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 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지키는 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바로 좋은 마음, 즉 옥토를 가진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배를 드린 숫자를 자랑합니다. “나는 한 주에 예배를 5번도 넘게 드립니다. 저는 새벽예배도 꼬박꼬박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숫자를 보시는 분이 아니세요. 그 예배 가운데 주어지는 말씀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주님은 더 주의 깊게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예배를 10번 드리지만 들은 말씀을 흘려 보내는 사람보다, 예배를 한 번 드려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경청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 보실 때는 더 훌륭한 성도 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열매 맺게 하십니다. 이와 같은 원리는 성경읽기에도 적용 됩니다. “나는 하루에 성경을 20장 봅니다. 나는 하루에 성경을 4시간씩 읽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거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이 없어서 말씀을 단 한 구절을 읽었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삶 속에서 몸부림치고 말씀 앞에 자기를 복종시키려고 애쓰는 그 사람을 더 좋아하십니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와서 “나는 오늘 식당을 10군데나 다녔어!”하고 말한다면 뭐가 부럽겠습니까? “나는 오늘 밥을 여섯 시간 동안 먹었어!’ 뭐가 부러워요? 그러나 이런 건 부럽죠. “내가 오늘 맛 집에 가서 정말 기가 막힌 요리를 먹었어.” 예배도 마찬가지 입니다. 얼마나 많이 예배에 참석하느냐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려도 그 예배 가운데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얼마나 지키고 순종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듣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 주님의 그러한 주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교회 와서 말씀을 듣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시간과 장소는 바로 우리가 이 들은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나의 가정과 내 직장과 같은 일상 속 현장 입니다. 주님은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세상 속에 나아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바로 옥토와 같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상품’은 바로바로 찍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려야 탄생할 수 있습니다. 장인의 손에서 떨어지는 땀과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있어야 비로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끝까지 기도의 눈물과 땀 흘리는 수고가 있는 인내 속에서 하나의 멋진 작품 같은 그리스도인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좋은 밭에 뿌려진 씨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네 가지의 상태로 나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 ‘옥토’ 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땅을 마음에 가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 마음이 옥토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작업들을 해야 하겠습니까? 죄를 회개함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을 기경해야 합니까?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있는 상처와 아픔과 죄악의 돌덩어리들을 제거해야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의 가시떨기를 뽑아야 하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듣고 지키는 옥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 남은 우리의 일생 동안 이런 좋은 마음 밭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