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1. 새로운 가족관계 (마태복음 12장 38-50절)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 사람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눈먼 자들이 다시 보게 되었고, 귀머거리들이 다시 듣게 되었고, 벙어리가 다시 말하게 되었으며, 문둥병자들이 깨끗하게 나음을 받았고, 앉은뱅이들이 일어나 걸어갔으며,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표적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 되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앞서 행하신 모든 표적들은 못 본 척 부인한 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되심을 나타내는 새로운 표적들을 보여주실 것을 구했습니다. 이 얼마나 간사하고 악한 사람들입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악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들이 가진 마음과 생각이 악하다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음란하다’라고 하셨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음란은 결혼한 사람이 혼외 정사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영적으로 음란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 신앙을 버린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적을 찾는 자들을 향하여, 신실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무엇일까요? 다행히도 40절에 예수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치다가 그만 그가 타고 있는 배가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흉을 찾게 되었고 제비뽑기 결과 요나가 뽑혔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요나를 들어 배 밖으로 던졌고 폭풍우가 멈추게 됩니다. 한편 바다에 빠진 요나를 큰 물고기가 잡아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나는 밤낮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사흘 만에 물고기가 요나를 뱉어냄으로서 뭍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 40절 후반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관점에서 이 글을 보고 있는 우리들은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지내고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야 말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위한 구원자이심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십자가 죽음과 부활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심판 날에 그들이 당할 정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전에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 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니느웨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보다 더 크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저 멀리 땅 끝 [스바], 오늘날로 말하면 [에디오피아]에서 여왕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솔로몬보다 더 지혜롭고 크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가르침을 배우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 이들이 심판 날에 그들의 죄가 사함을 받지 못하고 정죄 당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43-45절까지는 유대인의 심각한 영적 상태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상황은 마치 일곱 귀신이 들어와 거하는 것처럼 심각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그는 물 없는 곳을 다니며 쉬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물 있는 곳’을 찾아다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물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더러운 귀신은 ‘물 없는 곳’을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 의하면 귀신들의 처소는 물이 없는 광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육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더러운 귀신이 찾는 ‘쉼’이란 고된 노동 뒤에 오는 ‘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악한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은 사람에게서 쫓겨난 더러운 귀신이 자신의 악한 욕망을 표출 시켜 줄 수 있는 다른 인간을 찾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먹이감을 발견하지 못한 더러운 귀신은 결국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사람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돌아가 보니 그 집이 비어 있고, 청서 되어 있고, 수리 되어 있었습니다. 집이 비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소가 되어 있고 수리가 되어 있다는 것은 더러운 귀신의 악한 욕망을 이루기에 더없이 최적한 영적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이에 더러운 귀신은 자기 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사람 안에 들어가 거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의 형편이 이전 형편보다 더 나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한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우상 숭배를 척결하고 율법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쓰는 등 적극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 개혁의 열기는 식어가고,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 형식적인 율법 준수에 머무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헌신이 없는 유대인들의 심적 상태는 더욱 악한 영이 깃들기 좋은 장소가 된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쾌재를 부르듯 자기보다 더욱 악한 일곱 영을 데리고 함께 들어가 정착하였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귀신보다 더 강한 존재가 와서 그를 구하기 전까지는 귀신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일곱 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를 결론 내리며 충격적으로 45절에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지금 이 일곱 귀신 들린 자의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 당시 그를 부인하던 그 세대의 이야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하고 살아가는 이 세대가 바로 더러운 귀신과 사탄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귀신에 매여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이처럼 악하고 더러운 귀신에 매여 있는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해 내는 사역입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집 밖에 찾아왔습니다. 성경의 분위기를 읽어보면 이 당시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지도자격인 바리새인들과 대립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의 가르침과 사역을 중단시키고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됩니다. 실제로 마가복음 3장 21절을 보면,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사역의 현장에 따라 나왔는데 이는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훗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 예수님의 형제들도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아무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죠. 이 때 한 사람이 예수님께 그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누구 참 자신의 가족인지 정의를 내려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50절 말씀을 봅시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열두 제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면 그가 누구이든지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든지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주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자들이 곧 예수님의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