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 좁은 문, 좁은 길 (마태복음 7장 13-20절)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설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설교의 결론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두 가지 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좁은 문입니다. 여태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기 위해 순종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한 좁은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위험과 핍박 그리고 고난이 뒤따르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좁은 문이야 말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에 예수님은 우리가 힘써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 대부분 사람들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아니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갑니다. 왜냐하면 그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향하는 길이 넓고 그 문도 크기 때문입니다. 즉 좁은 길과 다르게 위험도 핍박도 고난도 없습니다. 평안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두 개의 문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심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은 매우 험난하고 고난이 따르는 길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제자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지금 걷고 있는 길을 걸어간다면 앞에 어떤 문이 나옵니까? 영생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입니까? 아니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까? 좁아 터진 길을 걷기 힘들고 싫어 넓은 길에 들어섰다면, 속히 방향 전환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살아가는 이 길이 힘들고 어렵다 해도 길을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거지 선지자들은 좁은 길이 나쁜 길인 듯 속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고난의 길을 벗어나 쉬운 길, 넓은 길을 가도록 유혹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고난, 헌신, 희생, 포기와 같은 주제들을 반대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만 가득한 것처럼 포장합니다. 사실 이러한 가르침은 얼마나 솔깃한 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고난과 환난, 핍박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봅시다. 거짓 선지자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양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선한 그리스도인 듯 자신을 포장합니다. 그러나 그 속은 ‘노략질 하는 이리’가 숨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겉으로는 성도들의 영혼을 위하여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자기 잇속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왜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는 것일까요? 그래야 사람들이 자기에게 모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회개하라.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난이 따른다. 제자도에는 섬김과 희생 포기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부담 갖고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다 잘 됩니다. 고난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이런 솔깃한 가르침에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시다. 예수님은 그를 따라가는 제자의 길이 [좁은 길]이며, 길이 협착하고 어려운 길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좁은 문, 좁은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참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인지 아니면 거짓 교사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나무와 열매에 대한 비유로 이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17-19절 말씀을 봅시다.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세상에 가시나무에서 포도나 사과가 열리는 법은 없습니다.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매는 사람의 언어행실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실을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생각,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선한 삶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오직 좋은 나무만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곧 좋은 나무입니다.

도둑질 하는 사람이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리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욕하고 주먹질 하는 사람이 마음에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품고 있을 리 없습니다. 열매가 나무의 정체를 밝혀 주듯이, 사람의 언어 행실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보입니다. 우리도 이전에 예수님 모를 때는 나쁜 열매 맺는 나쁜 나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믿고 사는 우리들은 좋은 나무에 접붙임 바 된 새로운 나무들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우리들은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있습니까? 천국의 정원사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합한 삶의 열매를 맺을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나무가 겉으로는 똑같아 보여도 살아 있는 나무가 있고, 죽은 나무가 있기 마련입니다. 과수원에서 일하는 주인 입장에서는 죽은 나무는 비료 줄 이유가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어떻게 합니까? 19절 봅시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농부 입장에서 보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땔감용 나무 일 뿐입니다. 아무리 거짓 선지자가 양의 옷을 입고 자신을 속이려고 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향하는 자들도 하나님께 그들의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고 계신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 옆에 놓여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심판의 날로도 묘사하지만, 추수하는 날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주인 입장에서는 나쁜 열매 맺는 나무는 다 뿌리 뽑아 땔감용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좋은 열매 맺는 나무는 어떻게 할까요? 비료도 잘 주고 벌레 먹지 않도록 더욱 정성스럽게 잘 가꿀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삶을 축복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좁은 길입니까? 아니면 멸망의 문으로 향하는 길입니까?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열매 입니까? 아니면 나쁜 열매입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가고 우리 말과 행실이 주님께 칭찬과 인정 받도록 수고하여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 극상품 열매로 맺어질 우리 삶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