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15 천국에서 큰 자와 이 세대 (마태복음 11장 11-19절)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 되기 전에는 그 누구도 백인 아닌 다른 인종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 쉽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선입관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도 선지자 하면 떠 오르는 선입관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세리들과 함께 교제하는 예수님의 파격적인 행보가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교회 담임목사님이 주일날 청바지나 반바지를 입고 말씀을 전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마 교인들이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담임목사 하면 이미 정해진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은 예수님의 행보에 매우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그리는 선지자의 정형과 다르자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실체를 비유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 여기 시장에서 소꿉놀이 하는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 중 몇 명이 결혼식 놀이를 합니다. 한 아이는 남편을 다른 아이는 아내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피리 부는 흉내를 내며 서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기와 함께 놀아주지 않는 나머지 아이들을 보며 화를 냈습니다. “너희들은 왜 우리랑 같이 춤을 추지 않는 거야?” 그러나 나머지 아이들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출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소꿉놀이 하던 어린아이들이 오늘은 장례식 흉내를 냅니다. 너도나도 엉엉 우는 연기를 하며 통곡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이 아이들처럼 장례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울지 않는 아이들을 향해 “너희들은 왜 우리처럼 울지 않는 거야?” 하고 화를 냈습니다. 이처럼 결혼식 놀이나 장례식 놀이 같은 소꿉놀이에 같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하는 미성숙한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바로 이 어린아이들과 같다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와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자 사람들이 `그는 귀신 들렸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께서 먹고 마시자 `이 사람은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선지자의 모습, 메시아의 모습을 갖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선입관과 맞지 않아 예수님을 부인한 모습은 비단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세상에 고통이 있는가? 우리를 사랑하는 신이 있다면 왜 이 세상에 가난과 질병과 전쟁이 있는가?” 여전히 이 시대 사람들 역시 ‘신에 대한 선입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고통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면 범죄자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신의 모습이 아니기에 그들은 신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불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기도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내가 계획한대로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이끌어가시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이 일하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19절 후반부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여전히 내 기대와 소원과 달리 우리의 삶이 펼쳐진다 하여도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인생의 먼 훗날 뒤를 돌아보며, “그래 비록 내가 원하고 꿈꾸던 삶은 아닐지언정, 이것이야말로 가장 복된 인생이었구나?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구나? 하나님은 내가 보지 못한 부분까지 보고 계셨구나? 나는 틀렸었고 하나님이 옳았구나?!”하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뜻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처럼 예수님이 내 장단에 맞춰 춤추시거나 곡하시지 않는다고 그 분을 원망하고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 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북군의 지도자들이 모인 연회장에서 교회의 대표가 링컨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북군이 승리하게 해 달라고 온 교회가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시 남북전쟁의 전황은 북군에게 불리하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기도가 힘든 전쟁을 하고 있는 대통령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링컨 대통령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브라함 링컨의 위대함이 여기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스스로를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내 틀과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삶과 시각을 주님의 뜻에 맞추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작가는 말하기를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이 기적이며 우리가 살아갈 모든 순간들도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슬프고 힘들고 피곤하여 지지고 어려울 수 있을지 모르나, 인생의 마지막 날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가장 지혜롭게 인도해 오셨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내 틀에 맞추려 하지 마시고, 성숙한 자세를 갖고 내 삶과 시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 가시는 복 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