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1 비판과 분별 (마태복음 7장 1-12절)

 

오늘 본문은 자신의 연약함과 실수를 보지 못하고 상대편만 비판하기 급급한 모습을 가진 이들에 대한 주님의 메시지 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니까요. (7:1)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7:2)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것만큼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며 남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너희도 저울질 당할 것이다.” 고 말씀 하십니다. 주님은 타인을 비판하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보니까 이 비판이 누구에 대한 비판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3절을 보시겠어요? ‘어찌하여’란 단어 다음에 누구의 눈 속에 있는 티 입니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 입니다. 즉 지금 이 비판하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한 가족 한 식구인 형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육신적인 형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가족을 포함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가까운 이런 자들의 실수와 연약함을 쉽게 정죄하고 그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들도 주님이 보실 때는 여전히 연약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경우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 잡아 주려 합니다. 마치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경기 두는 자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판을 훨씬 잘 봐서 훈수 두듯이 남의 삶에 대해서는 쉽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은 자기의 연약함, 자기의 잘못과 실수는 잘 보지 못합니다. “남들이 하면 불륜인데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그의 실수를 지적하기 이전에 먼저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연약함을 고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형제의 눈에 있는 작은 티를 보기 보다 우리의 내면 안에 있는 들보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티’라는 단어는 나무를 톱으로 켤 때 생기는 작은 먼지 같은 톱밥을 의미합니다. ‘들보’는 커다란 통나무를 의미합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가장 큰 재산 중 하나가 바로 사유하는 시간입니다.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까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점점 일기를 쓰는 사람도 적어집니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은 없던가? 내 말이나 행동 중 미숙한 부분은 없었던가? 그러한 부분을 고치기 위해 내일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발전 변화시킬 것인가?” 이런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 피곤하고 할 일이 많으니까 그냥 살아가기 바쁩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에는 이미지가 잘 뜨지 않는 법입니다. 때로는 아무리 바빠도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고요하고 잔잔한 호숫가를 찾아가 내 모습을 그 물에 비춰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얼굴에 묻은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고,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정리해야 합니다. 즉 내면의 심성을 가꾸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우리는 말씀의 거울 앞에 나가야 합니다. 말씀 앞에 나를 비춰보고 과연 내 눈에는 티는 없는지 혹은 들보는 없는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날마다 기도로 주님과 대화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 혹시 내 삶에서 끊어야 할 죄는 없는지, 반대로 멈추었던 그 무언가를 다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바로 이러한 영적 돌아보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내면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비판은 쉽습니다. 그러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들보를 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우리 형제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내 형제 역시 나와 같은 연약한 죄인 중 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를 이해하고 그를 더 사랑으로 감싸고 그에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본문만큼 유명한 구절도 없을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본문의 헬라어 원문을 보면 현재완료형 명령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회적, 일회적인 명령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해서 실행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Keep on asking, 계속해서 구하라 Keep on Seeking 계속해서 찾으라 Keep on knocking 계속해서 두드려라!” 예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계속해서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찾는 것을 찾을 때까지 찾으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계속해서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럼 우리가 어제 기도한 제목을 가지고 오늘 또 기도하는 거 이거 괜찮은 건가요? 네 괜찮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직접 그 기도가 이뤄질 때까지 기도하라 하셨어요. 우리의 기도가 쌓이고 쌓여 하나님의 타이밍이 되면, 그분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가 차게 되면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이뤄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까지 기도해야 되요? 구한 것을 받을 때까지, 찾는 것을 찾을 때까지, 두드리는 이 문이 열릴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거에요.

저는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 하나님 참 인자하신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친구 중에 했던 이야기를 잊어 먹고 저에게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처음 들을 때야 귀 기울여 듣지만 두 번 세 번 말하면 저도 지치지 않겠어요?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맨날 같은 기도제목으로 온다면 하나님도 귀찮으시지 않으시겠어요? “야, 너 오늘도 또 같은 말 하러 왔냐? 좀 다른 것 좀 구해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외면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억울함을 잘 알고 계세요. 어느 곳 하나 의지할 곳 없고 하소연 할 곳 없는 우리의 심정을 잘 알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똑같은 사연을 가지고 기도해도 여전히 그 기도의 제목들을 들어 주십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예수님은 어떤 자에게 기도가 응답 된다고 약속하고 계십니까?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가, 두드리는 이에게.. 이렇게 보면 기도에는 자격이 없는 거 같아요. 기도하는 사람마다 다 받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정말 구하는 자마다 다 받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9-1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기도를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와 교제의 도구로 이해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자녀의 특권입니다. 따라서 아무나 기도한다고 다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지나가는 행인이 문을 두드린다고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아무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만이 이 기도의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 오직 그들에게만 주어진 영적인 특권이 바로 기도 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성도들의 특권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아들이고 딸이 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9-11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7: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악한 자라도 부모가 되면 이렇게 자녀에게 못 된 일을 저지를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부모 마음이 그렇습니다. 내 두 눈이라도 빼서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고.. 내가 덜 먹고 내가 못 입어야 자식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 입에 음식이 들어가고 행복하게 살면, 그 모습을 보고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이 부모 마음이라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서 기도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기도를 설명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시잖아. 그분이 너희에게 좋은 것들을 주실 거야. 네가 구하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실거야. 너가 찾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찾게 해 주실 거야. 네가 두드리는 그 문보다 더 좋은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거야.” 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오늘 본문 말씀의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좋은 것 Good thing 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the best thing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기도하는 그 순간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 오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으신 그 분,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기도의 자리에서 경험하시기를 축복하며, 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구하고, 계속해서 찾고, 계속해서 두드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또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