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1. 일어나서 먹으라 (열왕기상 19장 1-8절)

      

바야흐로 때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이라 평가받는 아합 왕이 다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그 대신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이 암흑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발하신 구원투수가 바로 엘리야 선지자 입니다. 엘리야는 평범한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는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 입니다. 스포츠로 따지면, 국가대표중에서도 명예의 전당 (Hall of Fame) 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사람 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갈멜산에서의 대결을 신청합니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그 당시 갈멜산은 바알 선지자들의 홈그라운드였습니다. 그러니까 갈멜산은 오늘날 한국으로 따지면 스님들이 득실대는 불국사가 위치한 경주시 토함산 같은 곳이 바로 갈멜산이었습니다. 이곳에 엘리야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전국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이 모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날 영적 전쟁에서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전례 없는 대승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갈멜산 대첩입니다. 기도로 하늘에서 불을 내린 엘리야 선지자는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이스라엘 땅에 이번에는 기도로 비도 내리게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이 사건은 삽시간에 퍼져 나가 바알을 섬기던 자들은 엘리야란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오늘 본문을 보니, 이세벨이란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벌벌 떨며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부인이자, 바알을 열심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자 입니다. 2절 말씀에 보니 그녀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사람을 통해 협박 편지를 보냈습니다. “(왕상 19: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이세벨 여왕이 자기를 죽이겠노라고 협박하자 엘리야는 그녀를 피하여 남쪽으로 도망쳐 내려왔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두려웠습니다. 엘리야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쉬지 않고 도망쳤습니다. 전쟁터의 영웅이 총을 버리고 적에게 등을 보이며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보면 그가 브엘세바까지 갔다고 합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지도를 놓고 보면 최남단 도시 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이세벨이 두려워서 땅 끝까지 도망쳤다는 말입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에 있던 사람이 땅끝마을 해남, 저 먼 부산으로 도망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가 걸어간 구간이 어느 정도 되나 보니까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로 계산했을 때 약 160km 약 100 마일 정도 걸어간 셈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시카고까지 약 49마일이니까 시카고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리입니다. 그러니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서 얼마나 멀리 도망쳤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브엘세바에 자기 사환을 머물게 한 후 4절에 보니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을 더 갔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만 하룻길은 약 32km 정도로 계산 합니다. 그러니 지금 엘리야는 약 200km, 125마일을 도망쳐 온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은 매우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조금 전, 바알 선지자 450명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엘리야 선지자가 고작 여자 한 사람의 협박에 겁을 먹었습니다. 동물의 왕국으로 따지면, 얼룩말도 잡아먹고, 황소도 잡아먹는 사자가 지금 당나귀를 피해 도망가고 있는 셈입니다. 엘리야는 모세와 함께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주인공이었습니다. 기도로 하늘의 비와 우로를 멈추게 하였고, 또 기도로 하늘에서 큰 비를 내린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엘리야가 기도하자 큰불덩어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 수많은 기적의 중심에 있던 엘리야, 바알 선지자와 450대 1이란 사상초유의 영적 전쟁터의 영웅 입니다. 비유하자면 그는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 병사가 쏘는 총알을 피해가며, 탱크 사이사이를 뛰어 들어가 적군의 참호에 수류탄을 던지고 돌아온 영웅 중의 영웅 입니다. 그런 엘리야가 오늘 총도 아니고, 탱크도 아닌, 이세벨이란 여인의 협박에 겁을 먹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볼 때마다 어떻게 챔피온 엘리야가 애송이 이세벨에게 어퍼컷을 맞고 쓰러질 수 있었을까 의아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것에 넘어지고, 작은 것에 시험 드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길을 가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때를 보면, 큰 바위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주먹만한 돌부리에 넘어집니다. 큰 나무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땅에 있는 잔 가지에 걸려 넘어집니다. 근육질 몸을 가진 육척 장신도 작은 돌부리에 걸려 자빠지고 넘어지는 법입니다. 커다란 바위에 눌려 죽는 일은 가끔 일어나지만,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더 큰 치명상을 입는 일이 더 자주 발생합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시험 드는 것 보면, 큰 거 때문에 시험 들거나 넘어지는 일을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정말 조그마한 일 때문에 마음에 시험 들 때가 더 많습니다. 밥 먹는 거 때문에 싸우고, 혹은 서로 대화 나누다가 상대방이 조금 말실수 한 거 때문에 상처받고 그러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작은 것들에 마음에 시험 들고, 우리의 영혼이 낙담 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람도 약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수년간 땀을 흘리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고된 운동을 통해 강철 같은 몸을 만든 올림픽 대표 레슬링 선수라 할지라도,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가 와서 급소를 공격하면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무척 강해 보여도 연약한 부분이 항상 남아 있는 것이 인간 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신앙 좋다는 사람도, 평상시 자기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와서 듣기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을 한다거나,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면 화가 나고 미움이 생기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 마음이 이런 작은 것에서 깨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보호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 한 마디에 내 마음이 쉽게 깨지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경계를 풀고 가드를 내리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결정타를 맞고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엘리야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조금 전 바알 선지자 450명과 싸운 직후 였습니다. 영적으로 경계를 늦추고 있었습니다. 열왕기상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동안 읽어보면 엘리야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주거지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의 협박 편지에 그만 겁을 먹은 채 하나님의 음성도 묻지 않고 “걸음아 나 살려라”라 하고 남쪽으로 도망쳤습니다. 아무리 엘리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깨어지 있지 않으면 이처럼 삶의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작은 일에 시험 들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늘 영적 경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엘리야의 입장이 되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엊그제만 해도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불덩어리가 제단에 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3년간 멈춘 비가 자신의 기도로 다시 내리었고, 그 역시 그 비에 젖었을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사역들을 행한 자신이 지금 이세벨이라는 여자 한 사람의 협박이 두려워서 이 먼 길을 왔으니 자기가 돌아봐도 인생이 너무 허무합니다. 끝없는 사역에 마음도 소진되어 있고, 번 아웃 되었습니다. 먼 길을 오느라 몸도 지치고 체력도 바닥이 났습니다. 이 즈음 되었을 때 엘리야가 한 로뎀나무를 발견하고 그 아래 앉았습니다. 로뎀나무가 무슨 상수리 나무처럼 높게 뻗은 나무도 아니고, 버드나무처럼 잎이 무성해서 그늘이 크고 시원한 나무도 아닙니다. 로뎀 나무는 광야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사실 나무라기 보다는 덤불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로뎀나무는 사람 키보다도 작습니다. 그래도 광야의 뜨거운 햇빛을 피하여 잠시 쉬고자 그 로뎀나무 밑에 들어가 앉아 있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심신이 지쳐 있고 몹시도 피곤합니다. 4절 말씀을 보니 그는 탄원하듯이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엘리야는 무엇이 넉넉하다고 한 걸까요? 그가 여태까지 이루어 온 업적?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기적? 그가 받고 있는 고난? 아마 총체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하나님 이 정도면 저 충분히 할만큼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사역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 중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의 상태에 빠지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누구보다 열심으로 밤낮 가릴 것 없이 부지런히 사역하고, 매일 매일 쌓여 있는 사역과 업무에 치여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하나 터지면, 참아왔던 마음이 물 쏟아지듯이 와르르 무너지고, 유리잔이 깨어지듯이 와장창 깨지는 것입니다. “아… 이제 정말 그만 하고 싶다… 내가 더 이상 이 교회 나오나 봐라. 딴 교회 가서 편히 신앙 생활 해야지.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할만큼 했다…” 이렇게 마음에 그 동안 참아왔던 울분과 스트레스가 한 번에 터지면서 극심한 “영적 침체”가 찾아옵니다.

“하나님, 저 더 이상 못해요. 저 말고 다른 사람 시키십시오. 왜 저만 이렇게 고생해야 합니까? 왜 저만 이렇게 외롭게 섬겨야 합니까? 저도 할만큼 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해 푸념 섞인 외침을 남긴 채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악덕 고용주라면 지쳐 쓰러져 잠들어 버린 엘리야를 마구 흔들어 깨우며 채찍질하였을 거에요. “엘리야 네 이놈, 내가 까마귀로 빵도 주고 고기도 주었건만 이렇게 여기서 퍼질러 잠을 자고 있느냐! 예끼 고얀 놈 밥값은 해야지! 어서 가서 다시 일하지 못할까?” 만약 하나님이 악한 분이셨다면 이렇게 막 엘리야를 나무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지치고 힘들어 하는 주의 종들을 매정하게 다루는 분이 아니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마음이 무겁고 육신이 지처버린 엘리야를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마음 속 깊이 외로워하고 있으며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세요.

하나님은 로뎀 나무 아래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9: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5절에 천사가 어루만지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7절에도 나옵니다. 천사가 엘리야를 깨우려고 발로 차거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콕 찔러서 깨우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이 장면은 천사가 엘리야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그려 줍니다. 천사가 지쳐 쓰러져 있는 엘리야의 몸을 쓰다듬어 주며 위로하였습니다. “엘리야, 일어나서 이거 먹으렴.” 엘리야가 둘러보니 머리맡에 뜨거운 숯으로 구워 낸 빵 한 덩이와 물 한 병이 있습니다. 광야에 지쳐서 잠을 자다가 눈을 떴는데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닌 천사가 차려준 밥상이 눈 앞에 있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감동 했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지친 영혼들을 질책하시지 않고 오히려 힘을 얻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는 그것을 먹고 마시고 난 뒤 피곤함에 다시 누웠습니다. 얼마 즈음 지났을까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집니다. 7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19:7)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엘리야야. 일어나 뭘 좀 먹어라. 네 갈 길이 아직 멀었다.”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 빵을 먹고 물을 마시고 기운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여 주신 새 힘을 받은 엘리야는 사십 주야를 더 걸어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이세벨이 무서워 도망 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지쳐버린 몸과 마음으로 쓰러져 버린 엘리야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그를 돌아보고 계셨고 그에게 쉼을 주시고 재충전할 수 있는 새 힘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시 넘어지곤 합니다. 그게 인간이고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은 무엇입니까? 지치고 힘들어 넘어져 있는 우리의 어깨를 토닥여 주시고, 힘들어 하는 우리를 쓰담아 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누구든지 지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쉼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어 그를 쓰다듬어 주시고, 그를 위해 빵과 물을 친히 준비해 주시고 먹이신 하나님께서 지쳐버린 우리에게도 쉼과 힘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또 다시 남은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