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5.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4장 12-25절)

 

예수님은 언제 우리를 찾아오실까요? 100일 작정 기도 마친 후 기도원에서 내려 올 때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까요? 아니면 40일 금식 기도하는 마지막 날에 오실까요?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거룩한 장소에 예수님이 찾아오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 현장으로 찾아오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 속 등장하는 제자들 역시 자신이 가장 친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일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연극 배우에게 무대란 제 2의 고향이듯이, 어부 베드로에게 바다 위 떠 있는 배란 공간은 그에게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였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평생 고기를 잡어다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평생 다녀 온 직장 사무실, 집무소, 연구소, 또는 가게 입니다. 내가 던킨도너츠 또는 스타벅스 커피 마시고, 점심 도시락 먹는… 어쩌면 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현장에 온 세상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십니다. 베드로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해변가에서 한창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물망을 잘 정리하고, 깊은 바다에 나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바로 그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사실 마태복음만 읽으면 오늘 이 장면이 베드로와 예수님이 처음 만난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본래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는 말을 듣고 안드레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그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게 됩니다. 안드레가 곧장 자기의 형 베드로에게 찾아가 “형 내가 구약에서 말한 그 메시야를 만났어!”하고 형을 전도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동생 안드레를 따라 예수님 만나러 갔다가 거기서 예수님이 그에게 게바, 즉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학자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장면은 이러한 일 이후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들이 처음 지나가는 낯선 자를 따라 무작정 떠나갈 리 없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말씀이 당혹스럽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 손에 들고 있던 그물도 버리고 배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평생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가느냐 아니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본문에서는 단순히 그물만 버려두었다고 이야기 합니다만, 사실 이들은 생업을 놓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미 결혼한 상태 입니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페트로낼라’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혹자는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치유해 준 여인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가 자식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 그것은 그가 진실로 그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음을 의미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경우 우리는 예수님을 잘 따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정도면 그래도 예수님 잘 믿는 거 아닌가? “예배도 안 빠지지.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지. 교회도 열심히 섬기지. 그래 나 정도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지.”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무리와 제자로 나뉘게 됩니다. 무리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결코 제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무리이십니까? 아니면 제자이십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린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 집도 팔고 차도 팔고 집문서를 다 교회에 헌납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 너 그거 내려 놓아라. 너 그거 내게 바치라 할 때 아브라함처럼 아무것도 아끼지 아니하고 자기 하나밖에 없는 독자도 아끼지 않고 바칠 수 있는 마음 가짐. 그것이 바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All or nothing 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스스로는 제자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못하는 사람은 ‘무리’일뿐 결코 ‘제자’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또 다른 해변가에서 고기 잡을 준비를 하고 있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부르십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이번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강요는 없습니다. 전적으로 선택은 야고보와 요한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될 것이냐, 아니면 ‘제자’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 22절에 보니 그들은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배는 ‘물질’을, ‘부친’은 ‘관계’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세상의 모든 물질과 인간적 모든 관계를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해야 베드로,처럼 안드레, 야고보, 요한처럼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되는 것 그것은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말에게 물을 마사기 할 수는 없듯이, 예수님에 대하여 소개할 수는 있으나 제자가 되는 것은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참 된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게 됩니다. 내가 가진 물질, 내가 가진 인간관계,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 그 모든 것도 예수 보다 귀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양 가사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고,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고,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세상 즐거움과 세상 자랑마져도 다 버린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오늘 우리에게도 선택이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 안에 있는 그물을 계속해서 꽉 지고 살아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가시겠습니까?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