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8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요한2서 1장 1-6절)

요한2서는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직후 곧바로 쓴 짧은 서신입니다. 총 13절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의 서신 속에서 사도 요한은 2가지 핵심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 형제 간에 서로 사랑하라.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신 사건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를 경계하고 사귀지 말아라.

우리는 어제 새벽 요한일서 마지막 본문을 다루며 초대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이단 세력인 영지주의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물질이 악하고, 육체가 악하다고 가르쳤으며,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만이 선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사건 조차도 거짓이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그를 눈으로 보았으며, 손으로 만져본 사람입니다. 요한은 거짓 이단인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는 잘못된 가르침에 흔들리는 초대 교회 성도들을 진리로 붙들기 위해서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요한은 이 편지를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발송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여기서 택하심을 입은 부녀를 교회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택함 받은 교회와 그의 자녀인 성도들에게 편지를 발송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전체적으로 보면 ‘진리’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요한일서 뿐만 아니라 요한이 쓴 모든 글들을 보면 ‘진리’라는 개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사랑’과 함께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 진리를 가진 자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진리의 여부를 가려주는 참된 기준이 됩니다. 결국 진리를 아는 자들만이 그 진리 안에서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보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나를 내어주는 자기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배고프면 남에게 빵 안 줍니다. 내가 추우면 남에게 따뜻한 이불 안 줍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속성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살아가는 자는 그와 같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뛰어넘어 이타적인 삶, 공동체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를 향한 편지를 스며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스승이자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겨 주신 교회를 목숨을 걸고 사랑했습니다. 사도 요한 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와 같이 사랑했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순교에 이르렀습니다. 그들 뿐입니까? 기독교 역사상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하여 그처럼 처절하게 희생하고 헌신하며 순교에 이를 수 있었을까요? 2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며 죽어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까? 바로 그들 안에 자리 잡은 ‘진리’였습니다. 그 진리는 무엇입니까?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기 예수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구세주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십자가에 쏟으신 것처럼 우리들도 이웃들을 위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와 같이 살아갈 때, 3절 말씀처럼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거짓 이단들은 육체로 행하는 삶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형제들이 서로 싸우든지 다투든지 하는 일은 육체의 일이니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와 같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잡히시기 전날 밤까지도 가르치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새 계명입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 안에서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4절을 봅시다. “너희 자녀들 중에 우리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기쁘도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형제, 자매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니 사도 요한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 때, 그 모습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신앙은 결국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다시 한 번 교회를 향하여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자고 권면합니다. 5절입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교회여! 제가 이제 여러분에게 구합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제가 여러분에게 새로운 계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서로 사랑하는 삶이야 말로 교회 공동체가 처음부터 가진 계명입니다.” 이처럼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는 삶이야 말로 교회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이며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6절을 봅시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 계명은 우리가 처음부터 들은 바 그 가운데서, 즉 예수님 안에서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며, 형제 자매들을 섬기며 살아갈 때 우리는 진리와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되며,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가득 넘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 안에 거하십시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와 같이 살아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교회는 평강이 넘치며, 세상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