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7 영생을 확신하고 우상을 멀리하라 (요한1서 5장 13-21절)

 

 

오늘 본문은 요한1서의 마지막 본문입니다. 13절에 사도 요한은 자신이 이 편지를 기록한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내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이제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이 편지는 읽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 되었습니다. 이는 요한일서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가 쓰여진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심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 당시 교회 내 침투한 가장 강력한 이단인 ‘영지주의’는 영혼은 선하지만 물질과 육체는 악하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성경의 가르침과 위배됩니다. 성경은 결코 영적인 것은 선하고, 물질과 육체는 악하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질로 된 이 세상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인간의 몸도 분명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가르침을 주장한 이단 영지주의는 물질과 육체를 악하게 봄으로써 육체로 오신 예수님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또는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과 그의 죽은 육체가 부활하셨다는 것도 모두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사실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는 이런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 속아 넘어간 자들이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것과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모습에 크게 분노하고 탄식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누구입니까? 그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걸으실 때 그는 주님 곁에서 함께 걸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함께 지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 당하실 때도 사도 요한은 그 분과 함께 있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요한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결코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요한일서 책을 쓴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을 봅시다. “(요일 1:1, 개정)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이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그분의 육체를 직접 보고, 우리 손으로 만졌습니다” 이처럼 요한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존재를 가르쳤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이것을 썼다고요? 다시 5장 13절로 돌아가봅시다. 그의 편지를 읽는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14-15절에서 사도 요한은 주제를 바꾸어 기도하는 삶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14절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구하면 들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가 응답 받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생각대로 응답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응답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16-17절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를 지은 형제/자매를 구하라는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죽음에 이르는 죄’란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모든 구원 약속을 거절한 배교의 죄를 말합니다. 형제, 자매가 이와 같은 죽음에 이르는 죄가 아닌 다른 죄를 지은 경우, 그가 죄에서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그를 위하여 중보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죄를 범한 동료 신자들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18절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렵게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이 말씀은 마치 구원받은 자들은 죽을 때까지 더 잇아 죄를 하나도 더 짓지 않는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싸우는 죄를 지었고,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을 들킬 까 두려워서 자리를 떠나는 위선의 죄를 지었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자들이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다면, 바울도 베드로도 구원 받지 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8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말씀은 신자들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신자는 어둠의 영역, 죄의 영역에 있는 자들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죄로 인해 넘어지고 실족할 수 있으나, 어찌 칼을 들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이며 살겠습니까?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 때에 들어가 조직 폭력배가 될 수 있겠습니까? 신자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죄를 짓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악한 자의 손 안에 있지만, 우리 신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어둠에서 건짐 받아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18절 말씀 후반절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심으로써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19-20절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믿고 따르는 진리가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19절,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습니다. 20절,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에, 이제 우리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참되신 하나님,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참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 이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복음입니다. 사도 요한 시대 가장 강력한 이단인 영지주의는 영적인 것은 선하지만, 물질과 육체는 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부인했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특별한 영적 지식을 더 알아야 한다고 자꾸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19-20절에 영지주의자들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거절한 내용, 즉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졌다고 말해줍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이것이 요한일서의 주제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