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8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 (전도서 6장 1-12절)

1절을 봅시다. “(전 6:1, 개정)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솔로몬은 자신이 목격한 한 가지 불행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이 일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 즉 잘못된 일이고, 억울한 일이며, 참으로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일까요? 2절을 봅시다. “(전 6:2, 개정)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와 재산, 명예를 받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 중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그가 누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 결과 그는 그가 가진 부, 재산, 명예를 그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누립니다. 예를 들면, 백만장자인데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일 수 있겠죠. 또 다른 예를 들면,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유명 연예인이 돌연사로 갑자기 자택에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쌓는 일에만 마음을 두고, 그것을 선하고 좋은 일에 쓰지 못한다면 이는 복이 아니라 재앙에 가깝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받아도, 그것을 타인이나 외국인들이 누리게 된다면 이는 매우 헛되고 불행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고, 또한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인간에게 부, 재산, 명예, 존귀를 복으로 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시며, 그것들을 누리도록 허락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절을 봅시다. “(전 6:3, 개정)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솔로몬은 또 다시 부자이며 모든 것을 가졌으나,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누리게 되는 폐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자녀를 많이 낳고 장수하는 것은 신의 은총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100명의 자손은 많은 후손들을 가졌고, 그의 가문이 번창했음을 의미합니다. 그 정도로 자손이 많고 건강하게 무병 장수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런 복을 다 가지고 있다 해도 그의 영혼이 이 모든 것들 가운데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차라리 그 사람보다 엄마 뱃속에서 낙태된 자가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부, 재산, 명예 다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고,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는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질병, 환난, 극심한 고난, 혼란함이 있어서 그가 가진 것을 다 누리지 못한다면, 그에게 그 사람이 소유한 모든 것은 다 허무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또한 3절에 “안장되지 못하면”이란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죽을 때 객사하거나 어떤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경우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좋은 삶은 좋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죽은 이후 그의 시신이 무덤에 안장되지 못한다는 것은 살아 있을 때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삶을 살더라도 허망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가졌으나 누리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과 낙태 된 아이를 비교합니다. 4절을 봅시다. “태어날 때에 죽어서 나온 아이는, 뜻없이 왔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그 속에서 영영 잊혀진다.” 5절, “그 아이는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 사람보다 더 편하게 안식을 누리지 않는가?” 지금 솔로몬이 말하는 거에요. 6절 “비록 사람이 천 년씩 두 번을 산다고 해도, 자기 재산으로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하면 별 수 없다. 마침내는 둘 다 같은 곳으로 가지 않는가!” 솔로몬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분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 엄청난 부, 재산, 명예를 다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행복과 기쁨 없이 불행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못한 것이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천 년의 갑절, 즉 2천년을 살아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릴 줄 모르고 돈, 재산, 물질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그것이 전부인 냥 살면, 결국 남는 것은 죽음 뿐입니다. 많은 후손을 남기고 장수하였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할 줄 모르고 하나도 낙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나, 엄마 뱃속에서 죽은 아이도 모두 같은 곳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솔로몬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7절에 솔로몬은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치루는 모든 수고와 노역 그리고 일상의 모든 노역은 사실 배를 채우고 먹고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7절에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열심히 일하여도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8절에 지혜자나 우매자나 똑같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조차 만족시킬 수 없음으로 인생의 노력과 수고가 허무로 귀결된다고 말합니다. 8절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지혜자가 어리석은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이 타인 앞에서 예절 바르게 행동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얻을 유익이 무엇인가?” 솔로몬은 지혜자나 우매자나 겉으로 표현되는 모습만 다를 뿐 인간은 그 스스로 노력으로 결코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는 유한하고 허무한 존재임을 말했습니다.

9절을 봅시다. “(전 6:9, 개정)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솔로몬은 뜬구름 잡듯이 공상의 세계에서 배회하며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매며 사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만족하고 즐기며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공상에 사로 잡혀 있는 인생은 그야말로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허무한 것들을 갖지 못해 상상의 나라 속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비애를 말해줍니다.

10절을 보면, 솔로몬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것들이며, 새로울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다투어 이길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와 싸울 수 없고, 하나님의 행하심에 반항할 수 없습니다.

11절에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수고와 일을 해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의 수고와 노력은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12절을 봅시다.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허무한 날들 동안에 인생 가운데 사람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죽은 다음에 해 아래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말해 주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이미 우리 앞서 이 세상을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사라졌습니다. 인간은 삶의 결정자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에 대한 통제권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허락하신 것들을 만족해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