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7 [말씀 위에 삶을 건설하라] 시리즈 (3)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 (시편 1편 1-6절)


서론. 어떤 메시지를 보고 듣고 살아가는가?
지난 2021년 6월 발표된 “Screen Time Statistics”란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는 현대인은 하루에 평균 적개는 4,000개에서 1만개의 메시지에 노출된다고 합니다. 이 연구의 결과가 믿기지 않는 수치입니다만, 오늘날 우리가 TV, 컴퓨터,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노출되어 있는 시간을 고려해 본다면 사실 불가능한 숫자도 아닙니다. 미국인이 하루에 TV, 컴퓨터,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이 평균 몇 시간 정도 될까요? 약 7시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스마트폰 사용하는 시간이 약 3시간, 컴퓨터나 테블릿 사용하는 시간이 약 4시간. 또한 Facebook, Instagram 같은 SNS를 하는데 평균 2시간 정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7시간 이상 노출되어 있는 그 화면 속에서 우리가 노출되는 메시지의 양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것이죠.
또한 지난 2017년 [Lifeway]라는 기독교 출판사에서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을 실제로 읽는지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약 39%만이 매일 성경을 “조금씩 읽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10명 중 6명은 성경을 보지 않는다는 보고서입니다. 이 두 가지 보고서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장시간 미디어에 노출되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데 비해, 성경을 읽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거나 아예 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분명 사람은 자신이 자주 보고 듣는 메시지에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세상 속의 메시지 중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하고 유익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 삶에 큰 복을 가져다줍니다.

사실 우리가 많은 시간 TV, 컴퓨터, 스마트폰 화면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얻는 기쁨과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마치 초콜렛과 사탕 같은 불량식품처럼 달콤하고 맛은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 이러한 메시지에만 노출되어 살아가다 보면 심각한 영적 영양실조에 걸리게 됩니다. 그 결과 신앙생활이 건강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도 사라지게 되고,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의 헌신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영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모습일까요? 오늘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주의 성도들이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 비결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시 1:1, 개정)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절 말씀에서 다윗은 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서 세 가지 다른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메시지를 보고 듣고 따라가면 결국 악인의 꾀를 따르게 되고, 죄인들의 길에 서게 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메시지를 따라가는 삶 속에서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다윗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2절을 봅시다. “(시 1:2, 개정)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다윗은 그리스도인들이 복된 삶을 비결을 가리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영어 단어가 “Meditate”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묵상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지만 또한 ‘명상’이라고 해석되는 단어입니다. 명상이라고 하면,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이 눈을 감고 깊은 성찰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또는 절에 있는 승려들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비우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묵상이란 하나님의 진리로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2절에 사용된 ‘묵상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 [하가]는 ‘깊이 각한다’라는 뜻도 있지만 ‘혼잣말로 중얼거린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말한 묵상이란 조용하게 사색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내어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적 묵상이란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또한 우리 상황과 삶에 대한 주님의 진리를 말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씀 묵상하는 것이 잘 훈련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다윗이 그처럼 존귀하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복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말씀 묵상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 흔적을 찾아봅시다. 시편 119편 147-148절 말씀입니다. “(시 119:147, 개정)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시 119:148, 개정)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147절에서 다윗은 날이 밝기 전 즉 이른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사모했다고 기록했습니다. 148절에는 ‘새벽녘’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한밤중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기 위해서 한밤중에 잠에 들지 않고 눈을 뜨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주야로,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고 입으로 읊조리며 묵상했던 사람입니다.
이처럼 말씀 묵상과 말씀 암송은 서로 뗄 수 없는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묵상하려면, 먼저 우리 마음 속에 그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일수록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암송합니다. 이 중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 성경을 묵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성경을 우리 마음에 새겨 놓는다면, 어떤 문제를 마주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평안과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성경을 묵상하는 자가 누리는 복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시 1:3, 개정)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자는 마치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 같습니다. 그 나무가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이 시들이 않는 것처럼 그가 하는 일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여기서 나무는 우리들이고, 나무에게 끊임없는 생명의 물을 공급해주는 시냇가가 바로 말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는 행위는, 끊임없는 생명의 물줄기를 공급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풍성한 생명력이 소진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자동차는 gas를 넣어야만 계속해서 달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이 공급될 때에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힘과 기쁨, 사랑과 만족, 평안과 은혜가 그의 영혼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번영하기 시작합니다. 3절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십시오. 저는 사실 이전에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자는 어떤 고통고 고난도 겪지 않게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고통이 없고, 고난을 겪지 않는 자가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씀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분명 삶에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는 일들이 결국에는 성공합니다. 당장은 지는 것처럼 보이고, 억울한 일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희한하게 결국에는 승리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형통의 복입니다. 다윗이 시편 119편 165절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 119:165, 개정)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다윗의 고백처럼 주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평강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넘어뜨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 즉 세상의 가치관과 방향만을 좇아 살아가는 자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4절을 봅시다. “(시 1:4, 개정)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벼나 보리 같은 곡식을 찧어 벗겨 내면 아무런 쓸모 없는 껍질이 남습니다. 그 껍질을 ‘겨’라고 합니다. 바람에 날려가도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겨는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세상의 방향을 좇아 살아가는 악인들을 어떻게 대우하십니까? 그들을 바람에 날아가는 겨처럼 대우하십니다. 쓸모 없는 인생으로 만드십니다. 사람이 쓸모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심판입니다.
세상에 연필 한 자루도 쓸 데가 있고, 수저 하나도 다 쓰임새가 있기 마련입니다. 지천에 널린 흙도 다 사용할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악인은 겨처럼 쓸모 없는 인생이 되게 만드십니다. 이것처럼 굴욕적이고 치욕스러운 벌이 또 있을까요? 그 결과 5절을 보면 악인들이 그들이 받는 자신이 쓸모 없는 인생이 되어버린 심판과 벌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1:5, 개정)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우리는 사실 이 말씀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악인들 가운데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악인들이 형통해 보이는 삶을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 뜻과 반하여 살아가는 악인들의 인생은 심판으로 향해가고 습니다. 뿌리가 잘린 장미꽃처럼 잠시 동안은 그 아름다움과 영광이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생명의 근원이 끊어졌기에 결국에는 시들어 버리고 겨처럼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6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의인들과 세상의 악한 길을 좇아 살아가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대조하여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 1:6, 개정)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의인들의 길을 인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정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watch over’, 보살펴 조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길을 걸어가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보호해 주시고, 또한 그들의 인생을 보살펴 주십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기에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논지는 매우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을 지켜보고 그들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심판하시고 망하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따르는 자는 멸망하지 않는 복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의롭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며 말씀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감사의 마음 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평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때 몇 일전 묵상하고 암송했던 빌립보서 2장 14-15절 말씀이 마음 속에서 떠오릅니다. “(빌 2:14, 쉬운)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빌 2:15, 쉬운) 그렇게 하면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잘못했다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며, 여러분 역시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불평하지 않고 다투지 않음으로써 깨끗한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다른 교인들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 났습니다. “(요 13:34, 개정)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원수 같은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지. 그래 주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자격을 따지지 않고 한계를 넘어 우리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사랑하는 쪽을 택해보자!”
직장에서 고용주를 존경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고, 직장 상사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이 때 성령께서 몇일 전 묵상했던 골로새서 3장 22-23절이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골 3:22, 개정)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 3:23, 개정)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래 있을 때만 잘하고 없을 때는 욕하는 직원이 되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우리 주님을 섬기듯 대해보자” 이처럼 묵상과 암송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면화 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우리 삶으로 예배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묵상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매일 엄청난 숫자의 메시지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눈을 뜨자 마자 우리 마음을 채우려는 수많은 메시지들의 공세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며, 성경적인 가치관과도 맞지 않는 것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계속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생각이 인생을 좌우합니다. 따라서 삶의 모든 면에서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일 꾸준하게 성경을 묵상하고 암송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자들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시며 그들에게 구원과 복을 베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놓으십시오. 그리고 때마다 그 말씀을 꺼내어 묵상하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의 일상의 현장에 하나님께서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