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1 예수님의 우선순위 (요한복음 11장 1-6절)

성경에는 여러 명의 ‘마리아’가 등장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는 베다니라는 동네에 사는 이로써,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었던 여인 입니다. 그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가 중한 병에 들렸습니다. 이에 마리아와 그의 언니 마르다는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 예수님께서 즉시 베다니로 와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이 두 누이들이 급하게 예수님을 모시려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어떤 병든 자든지 고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나사로는 이미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사람의 전달한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나사로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것은 나사로와 예수님이 친밀한 사이였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따라서 나사로의 누이들은 예수님께 이 메시지가 전달되면 주님께서 만사를 제쳐두고 나사로의 병을 고치시기 위해 베다니로 한 걸음에 달려오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예수님은 오히려 계시던 곳에 2일이나 더 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 입니다.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마르다와 마리아는 속히 예수님께서 오셔서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 고대 했지만, 예수님은 나사로와 친밀한 관계가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다니로 즉시 가지 않으시고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더 유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만일 베다니로 가기를 지체하지 않으셨다면 충분히 중병에 걸려 있으나 살아 있는 나사로를 만나셨을 수 있었고, 그를 고치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리시기 위하여 일부러 이틀을 지체하신 것이죠.
한편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예수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이틀이나 지체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섭섭함과 야속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체하시지? 세상에 지금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하는 마음마저 들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나사로가 죽은 이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찾아갔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각각 예수님을 향해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11:21, 요11:32) 하고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자매에게는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이미 죽은 자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예수님의 능력에 제한을 두고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이 두 사람에게 그 보다 더 높은 차원의 믿음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병든 자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실 수 있는 생명의 주인이심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마르다와 마리아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성경 말씀을 읽는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밝히 보이셨습니다.
오늘 본문 속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한 번 봅시다. 예수님께 빨리 베다니로 와달라고 사람까지 보내 간청을 했으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 시가 급한데,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유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속으로 예수님을 얼마나 원망 했을까요?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섭섭함과 야속함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모습이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우리들에게도 긴급한 기도 제목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같이 경제가 어려운 때에는 하루가 급하고 한 주가 급한 기도 제목들이 있기 마련 입니다. 정해진 기한이 있어서 그 때까지 기도가 응답 되지 않으면 더 큰 위기에 처하게 되는 그런 기도 제목들도 있습니다. 그런 긴급한 기도 문제로 인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기도가 응답이 없고 늦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혹시 이전에 이와 같이 기도의 응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늦어지거나 아무런 없어서 하나님께 실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한 적은 없을까요?
우리는 내 자신의 문제가 해결 되는 것만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인생의 정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볼 때는 지금 당장 예수님께서 베다니로 오시는 것이 정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위해 준비하신 계획은 세상 끝날까지 전해질 가치가 있는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훗날 죽은 나사로가 무덤 속에서 부활하여 걸어 나왔을 때 비로서 이 두 자매는 왜 예수님께서 지체하셨는지 깨닫게 되었을 것 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인생의 시급한 문제들이 우리가 원하는 타이밍에 다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먹먹해질만큼 큰 고통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주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죽음까지도 이기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하지 못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귀한 자신의 목숨까지도 십자가 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런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장래의 영광은 얼마나 찬란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 입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이 오직 주께 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가장 좋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고 주께서 일하실 때를 믿음으로 인내하며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도 분명 지금 당장이라도 사랑하는 나사로를 살리러 달려가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은 나사로의 가정에 큰 능력을 행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능력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