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3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디모데후서 2장 8-13절)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그의 후계자 디모데에게 그와 같은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양성해 갈 것을 권면 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그를 사역자를 양육한 것과 같이, 디모데 역시 충성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양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복음 사역의 계승을 하며 자신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삶을 인내하며 살아가라고 권면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8절에 바울은 모든 복음 사역자가 본받아야 할 인내의 모범이 되는 분을 디모데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인내의 삶을 살아간 이상적인 모델이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점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디모데후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 바울은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라고 표현 했습니다. 진짜 그런지 한 번 볼까요? 1장 1절, 2절, 9절, 13절, 2장 1절, 3절 그리고 2장 10절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유독 여기 8절에서만 사도 바울은 순서를 바꾸어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모든 주의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에게로 향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인내하시고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인정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순서를 바꾸어 말하고 있는 것이죠. 바울은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으며 십자가의 죽음 이후 다시 살아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기억하라고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성하신 복음 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 복음을 가볍게 여기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 분을 기억할 때 어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말한 것이죠.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삶 때문에 갖가지 고난을 당한 사람 입니다. 감옥에 가서 옥살이도 해야 했고, 그를 죽이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를 공격하고 핍박 했습니다. 돌을 던지고, 칼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삶 곳곳에는 죽음의 위협과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복음 전파하는 일을 접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자신이 지금 감옥에 갇힌 신분이 되어 죄수가 되어 고난을 당하고 있는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매여 있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무엇이 이처럼 바울로 하여금 모진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을까요?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딤후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은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이 장차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광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 이 세상에서는 복음 때문에 고난 당할지 모르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날, 자신이 살아간 복음 전파를 위해 당한 고난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구원하고 무한한 영광을 가져다 줄 것을 확신했던 것 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서 죄수로서 당하는 모든 고난과 치욕을 인내함으로써 또 다른 성도들을 격려하고 그들도 자신과 같이 복음을 위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영광을 함께 얻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 나라 최전선에 서 있는 자신이 뒤로 물러나면, 그를 의지하고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동역자들 역시 복음을 버리거나 인내하기를 포기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다른 성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학자들은 11절부터 13절까지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부르던 찬송의 가사였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한 번 말씀을 살펴봅시다. (딤후 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딤후 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딤후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11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지금부터 그가 하는 이 말은 “믿을 수 있는 말이다.” 즉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하는 확신의 표현 입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할 것이요.”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여 주와 함께 죽은 자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부활하신 주와 함께 살게 된다는 고백 입니다. 12절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고 인내한 성도들은 주님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 고난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 어려운 상황에 따라 믿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부인한 자들 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최후 심판대 앞에서 영원한 형벌에 놓이게 될 것임을 뜻합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장면 입니까? 우리가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서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난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게서 떠나거라!” 하고 말씀하신다면 그 날 슬피 울며 믿음 버린 것을 후회하며 이를 갈지 알겠습니까?
바울은 이어서 13절에 말합니다. “(딤후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인간의 마음을 조석으로 변하여 믿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됩니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은 내 등에 비수를 꼽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변화하여 인간은 때때로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러할 지 몰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어떠한 경우에라도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며, 주님을 믿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고, 그와 늘 함께 계실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이죠. “디모데야, 만일 네가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여 복음을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 할지라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예수에 대한 너의 믿음을 굽히지 않고, 신실하게 끝까지 죽기까지 복음을 위해 살아가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마지막 날에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복음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처럼 그를 따라는 모든 성도들도 죽어도 반드시 주와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인내함으로 고난을 참으면 마지막 날 주와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고난과 핍박이 있다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다. 끝까지 인내함으로 어려운 순간마다 예수를 더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날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