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2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디모데후서 2장 1-7절)

디모데후서를 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다 로마에 2차로 투옥되어 있는 상태 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다 고난 당하는 것을 보자, 많은 사람이 그를 떠났습니다.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같이 바울을 버리고 배신한 자도 있었으나, 오네시보로와 같이 끝까지 바울 곁을 지킨 자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향해 수인이 되어 감옥에 갇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복음을 위해 자신과 같이 고난을 받을 것을 권면 했습니다. 또한 비록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어도, 복음 증거의 사역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바울은 디모데에게 담대함을 가지고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신실한 자들에게 이 복음을 가르칠 것을 권면 했습니다.
1절 말씀 입니다. “(딤후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디모데는 분명 믿음이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품이 매우 온순하고 육체적으로도 연약한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디모데는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던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홀로 에베소 교회를 어떻게 담당하나 걱정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강하고 담대하거라.”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권면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디모데야, 좀 더 강해지고 담대해지거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강해지라고 말하며 한 가지 조건을 붙입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해서 강해지거라.” 사역을 하는 자에게 강해지라는 말이 어찌 육체적 강인함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강하고 담대함은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실 수 있는 마음 입니다. 특별히 1절에 사용된 ‘강하고’란 단어는 ‘권능을 부여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에게 권능을 부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은혜를 통하여 디모데에게도 같은 권능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디모데가 강건해지는 것은 육체적 운동을 하거나, 굳은 마음을 먹고 잘해보겠다는 결심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강건해지는 것은 사람의 힘이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영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교제할 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의 원천은 주님이십니다. 풍력 발전기는 스스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자신을 밀어주는 바람에 의해 돌아갑니다. 바람이 세면 발전기가 생성하는 힘도 세집니다. 바람이 약하면 발전기의 힘도 약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힘도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힘 주시면 그는 능히 강건 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은 디모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하여짐으로 말미암아 한 가지 더 해야할 일이 있음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복음 전파를 위해 살아갈 것을 권면한 것과 같이, 디모데 또한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그들 또한 복음 전파를 위해 살 수 있도록 권면하는 일이었습니다.
2절 말씀을 자세히 한 번 들여다 봅시다. 먼저 바울은 “내게 들은 바”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해준 바른 교훈,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 복음을 바울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충성된 사람들은 직역하면 ‘신실한 사람들’, ‘믿음직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저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절에서 말하는 ‘또 다른 사람들’ 역시 아무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된 사람들로부터 진리를 위탁 받은 또 다른 믿음직한 부류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쳐 준 목회의 원리인 ‘영적 재생산’ 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이 모든 교인을 양육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교회 안에는 충성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배우고, 복음대로 살아가려는 자들입니다. 교회의 리더들 입니다. 이들은 말로써 혹은 삶으로써 다른 성도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영혼을 돌보는 양육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로부터 배운 성도들이 또 다른 리더가 되어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을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시작된 복음이 끊임없이 전파되어 영적 자녀가 영적 청년으로 자라나고, 더 나아가 영적 청년이 영적 부모가 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재생산”이 있는 교회야말로 건강한 교회 입니다.
목회자 한 사람이 교인 전체를 교육한다는 것은 정말 작은 개척교회가 아니고서야 지혜롭지 못한 방법 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이 세상에 예수님 보다 더 탁월한 목회자, 선생님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 방법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12명의 충성된 자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12명과 동고동락 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자 이 열두 명의 제자들이 또 다른 자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 줄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영적 재생산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며 바로 이 일을 위해 수고할 것을 권면 했습니다. 실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명령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영혼을 돌보고 사람을 키워내는 일을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바로 이 일을 하기 위해 자신과 같이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3절 입니다. “(딤후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아무 이유 없는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서 삶아가며 당하는 고난을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모진 고난을 당하였고, 수고를 해야했던 것처럼 그는 디모데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과 같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도자의 삶을 3가지로 비유 하였습니다. ‘군사’, ‘경기하는 자’, ‘수고하는 농부’ 이렇게 세가지 입니다. 먼저 복음 전도자의 삶은 군사와 같아야 합니다. 4절 입니다. “(딤후 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군대간 사람치고 자고 싶은만큼 자고, 놀고 싶은 만큼 노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군인이 아닙니다. 군사는 자신을 군인으로 불러 준 나라를 위해 봉사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하나님 나라 군사로 불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 입니다. 바울은 나라의 부르심을 받은 군사가 자신을 군사로 모집한 자를 위해 봉사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복음 전도자의 삶을 ‘경기하는 자’로 비유합니다. “(딤후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여기서 경기하는 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올림픽 국가대표 운동선수 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우승하는 것입니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법대로 해야 합니다. 달리기 선수가 심판의 출발 신호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달리면 탈락 입니다. 자신이 달려야 하는 레인 밖을 넘어가도 탈락 입니다. 10,000M 달라기라면 10,000M 끝까지 달려야 하는데, 중간에 달리다가 힘들다고, 나는 달릴만큼 달렸다고 주저 앉는다면 그 역시 탈락 입니다. 이처럼 경기하는 자는 정해진 룰대로 경기를 치뤄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 전도자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여야 합니다. 자기 편한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셋째로, 복음 전도자의 삶은 ‘수고하는 농부’와 같습니다. “(딤후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딤후 2:7)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무더운 여름철에 밭과 논에 나가 땀 흘려 일하는 농부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마에는 구슬 땀이 맺혀 있고, 그의 얼굴과 목은 뜨거운 태양에 새커맣게 타들어가 있습니다. 그의 손은 궂은살이 박혀 있고, 손가락 여기 저기 농사일 하다 생긴 상처가 훈장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세상에 땀 흘려 수고하지 않고 곡식을 얻는 농부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농부는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땀을 흘려 수고해야만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들도 복음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할 때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세 가지 비유 ‘군사’, ‘경기하는 자’,’ ‘농부’의 모습을 통해 복음 전하는 자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하며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싸우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어기지 말고, 힘껏 일하여 상 주심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삶이 바로 복음 전도자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바울이 전하여 준 것과 같이 충성된 사람이 되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 증거자의 삶을 살아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주님의 신실한 자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