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2 회개를 촉구하는 재앙 (요한계시록 9장 12-21절)

12절 말씀을 보니 (9:12)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나머지 두 가지 재앙, 여섯 번째 나팔재앙과 일곱 번째 재앙이 이 앞에 나온 재앙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여섯 번째 재앙은 무엇이었을까요? 13-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9: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9: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9: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천사가 여섯 번째 나팔을 불자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놓이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존재들이며, 15절을 보니 이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짜에 인류의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현재 인류가 70억명인데요, 그 중 1/3이니까 약 23억 명이란 엄청난 숫자가 이 여섯째 나팔 재앙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앞서 살펴본 다섯 번째 재앙인 황충 재앙은 고통스럽긴 했으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섯 번째 재앙을 통해 인류에 엄청난 죽음의 그림자가 도래하게 됩니다. 특별히 여섯 번째 나팔재앙이 시작될 때 천사들이 큰 강 유브라데에서 놓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유브라데 강은 에덴 동산에 있던 네 개의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즉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강입니다. 로마의 역사를 쓸 때 루비콘 강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의 전쟁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강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와 같은 주요 적군들은 항상 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왔습니다. 따라서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과 주요 적들 사이의 경계가 되는 강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이 적군이나 침략군이 유브라데를 건너 이스라엘로 쳐들어오는 것을 가리켜 큰 홍수가 이스라엘에 몰려오는 것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16절을 보니 이들을 치러 온 마병대의 수가 얼마나 됩니까? 이만만 입니다. 즉 2억이란 엄청난 군사입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 지구상에 2억이란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고 말하며, 이 사건은 마지막 때에 중공군이 유브라데를 건너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다라고 해석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근거가 약합니다. 또 어떤 성경학자들은 바벨론, 앗수르, 페르시아와 같이 중동의 큰 무슬림 세력이 일어나서 모든 나라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추정에 불과합니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당시에 2억의 마병대를 가질 만큼 큰 나라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만만이라는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상징하는 강력한 세력을 의미합니다. 아무도 이 세력을 꺾을 수 없기에 사람 1/3이 마병대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 마병대의 특징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여기서 기록된 모습이 앞서 살펴본 황충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마병대에게도 호심경, 즉 갑옷이 있습니다. 황충들에게 사자와 같은 이빨이 있었던 것처럼 마병대에게는 사자와 같은 머리가 있습니다. 이로서 마병대 역시 사자처럼 잔혹하고 파괴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들의 17절에 보니 그 말들의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옵니다.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이것이 ‘화약’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핵무기를 말하는 것 아닌가? 하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 당시만 해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불화살’이었습니다. 아직 화약제조술이 인류에게 전해지지 않은 때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폭탄 같은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이 말하고 있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이 하나님의 극렬한 심판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불과 연기 유황 이 세가지 재앙은 땅에 거하는 자들의 1/3에게 죽음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여전히 이 재앙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 것이 아니라 1/3이란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가해집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인류를 멸절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계신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한참 진행되는 가운데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가 택하신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본문에 나오는 말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말과는 다릅니다. 꼬리가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습니다. 즉 머리가 교묘하게 숨어있습니다. 악한 권세는 황충처럼 앞에서 드러나게 싸울 때도 있습니다만, 이 말처럼 뒤에서 보이지 않게 뱀과 같이 교묘한 전술로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도 선악과를 먹으라 강요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물어보면서 오히려 하와의 마음을 간교하게 뒤에서 유혹한 것이죠. 사단은 지금도 간교한 방법으로 정말 달콤해 보이는 수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자의 머리를 가진 자로 결국에는 그 유혹에 넘어간 자들을 사자가 먹이감을 삼킴 같이 죽음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20-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9: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9: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이 엄청난 재앙에서 살아남은 나머지 2/3… 이 정도 환란을 당했으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만 하건만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20절 말씀에 여전히 회개치 아니하고 여러 귀신들을 섬깁니다. 또 금은동 나무로 만든 우상들에게 절합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너무도 무지하게 됩니다. 아직도 한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갑에 부적을 지니고 다닙니다. 그냥 종이조각에 빨간글씨로 한문 몇 자 적어 놓은 건데… 그거 가지고 다니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몇 백만원자리 몇 천만원짜리 실크부적을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몰라서 그렇지 아직도 새해 선물로 실크부적 없어서 주고받는 사례도 허다합니다. 지금 이 맘 때 점집 가서 신년운세 물어보는 사람들 너무 많아요. 심지어 교회 집사님들 중에도 점집 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직도 자녀들 결혼날짜 잡을 때 사주팔자 보고 정하고, 강남에 있는 사주팔자 카페들이 불황을 모른다는 거 여러분 알고 계세요? 한국에 있는 CGV 극장에 가보면 지금도 구석에서 테이블 펼쳐놓고 타로카드 점쟁이들과 자신의 운세를 점보는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귀신과 우상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거죠. 그들의 특징이요 21절에 보니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 입니다. 여러분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영화들을 보세요 이 네 가지야말로 흥행 코드 입니다. 칼을 들고 적을 죽이는 주인공, 마술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복술, 음란한 영화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불륜은 더 이상 파격적으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방송국 관계자들의 말의 의하면, 사람들이 갈수록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화면 속 주인공들이 외도하는 씬이 없으면 시청률이 나오지도 않는다는 거에요. 거기다 요즘에는 동성애적 요소들도 어느 새 너무나 당연한 것인냥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시대의 문화들을 보며 세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즐겨 보는 TV program 들을 봐도 ‘살인’, ‘복술’, ‘음행’, ‘도적질’ 이 네 가지를 말하지 않고 이 세상의 미디어를 논하기가 어렵다는 거에요. 이처럼 세상은 마지막 때가 되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귀신과 우상 그리고 세상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믿으니까 신앙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믿음을 그냥 어쩌다 보니 받은 값싼 것인 줄 취급할 때가 많아요. 그러나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 고등하교 혹은 대학교 다니다가 아니면 그 보다 더 늦게 예수님 믿으신 분들은 아실 거에요. 예수님 믿는 것은요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불신자가 신자가 되는 것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계시록 9장은 이 세상에 큰 재앙을 내리시므로 죄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이러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아니하고 귀신들과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를 분별하여 깨어 있으시고, 이 세상의 흐름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